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유문(孺文). 민기(閔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의 민광훈(閔光勳)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민시중(閔蓍重)이며, 어머니는 홍탁(洪𩆸)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73년(현종 14) 생원이 되고, 1684년(숙종 10) 평강현령(平康縣令)으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조·병조의 좌랑,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한때 사학(四學)의 유생인 윤증(尹拯)을 비롯한 그의 일당의 미움을 사서 사퇴하였으나, 곧 병조좌랑으로 복직하여 지평으로 승진, 그 뒤 사간원정언·헌납, 이조좌랑, 교서관교리를 역임하면서 지제교(知製敎)와 중학교수(中學敎授)를 겸하였다.
1689년의 기사환국 당시 삭직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경상도관찰사·강화유수(江華留守)·대사간·도승지·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병조·예조·공조의 참의를 역임하고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여기에서 국방과 민정에 성의를 다하여 그 치적이 많았으나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에 의하여 면직되었다. 그 뒤 복직되어 호조·공조의 참판, 대사헌을 거쳐 1689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한성좌윤(漢城左尹), 한성우윤(漢城右尹), 병조참판, 부제학,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이때 종제(從弟) 민진후(閔鎭厚)의 상소 내용에 잘못이 있다는 소론 윤지선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여러 번 사직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 뒤 대사성·이조참판·동지성균관사에 임명되고 곧 병조판서·비변사유사당상(備邊司有司堂上)에 승진하였고, 대사헌·이조판서·상의원제조·판의금부사가 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