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회(士會), 호는 화은(化隱). 민영(閔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민응협(閔應協)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민희(閔熙)이며, 어머니는 정세구(鄭世矩)의 딸이다. 민흥도(閔興道)의 형이고, 민취도(閔就道)의 동생이다.
1678년(숙종 4)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0년 정언이 되었고, 1689년 부제학 유명현(柳命賢) 등이 홍문록(弘文錄)을 만들 때 1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발탁되었다.
그 해에 헌납·부교리를 지냈고,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하던 중 호당시(湖堂試)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숙종으로부터 상으로 표피(豹皮)를 받았다.
1690년 헌납으로 사서(司書)를 겸하였고, 이어 이조좌랑·승지를 거쳐 1691년 경상도관찰사, 이듬해 부제학을 거쳐, 1693년 이조참의, 1694년 대사성이 되었으며,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장수(長水)에 유배되었다. 특히,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곽산의 개원사(開元寺) 불량비문(佛糧碑文)과 영변의 보현사(普賢寺) 월저대사비문(月渚大師碑文)을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