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휴징(休徵). 할아버지는 맹희(孟喜)이고, 아버지는 부사 맹세형(孟世衡)이며, 어머니는 최준(崔濬)의 딸이다.
1654년(효종 5)에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검열이 되었고, 1660년(현종 1) 대교를 거친 다음, 1663년에 정언·봉교를 역임, 이듬해에 지평이 되었다. 1666년에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를 다녀왔다.
1670년에 황해도관찰사·공조참의·부승지를 거쳐 1672년에 승지·예조참의를 역임하였고 이듬해에 우승지·병조참의·호조참의·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1678년(숙종 4)에 안동부사가 되어서는 선정을 베푼 공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특진관에 이르렀다. 황해도관찰사 재임 때에는 도민이 흉년으로 생계가 곤란하자 진휼청(賑恤廳)의 적미(糴米: 환곡으로 빌려준 곡식을 받아들인 쌀) 4,000석으로 도민의 기근을 해소하였고, 폐현된 은율현(殷栗縣)을 다시 현으로 복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