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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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최천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84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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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유고(農叟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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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최천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84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2책. 목판본. 1784년(정조 8) 문인인 최기대(崔基大)와 이학해(李學海) 등이 편집, 간행하여 ‘농수유고’라 하였는데, 1896년 방손인 홍식(洪植)과 세윤(世允) 등이 다시 중간한 것이다. 권두에 권엄(權儼)의 초간서(初刊序)가 있고, 권2에 이중구(李中久)의 중간서(重刊序)와 권말에 김재인(金載人)·이헌락(李憲洛)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142수, 서(書) 15편, 부록인 권섭서도망작(權葉西悼亡作)·묘지명, 권2에 서(序) 3편, 기(記) 4편, 행장 1편, 명 1편, 설 1편, 제문 2편, 부 1편, 서(書) 19편, 부록으로 왕복서 7편, 심우기(心友記)·축문·상량문·행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격이 높고 음절이 씩씩하여 한나라와 당나라의 시와 같다고 하여, 선조 때의 유희경(劉希慶) 이후 제일이라는 평을 받는다.

「제언기(堤堰記)」는 1761년(영조 37) 김영수(金永綬)가 군수로 부임하여 제언을 쌓은 전말과 그의 공적을 기록한 것으로,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가뭄을 막은 공덕을 칭찬하고 물은 민생의 생활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설명한 글이다.

「삼강비명(三綱碑銘)」은 임진왜란 때 의주행재소에서 왕명에 의해 영남의 적진을 정탐하고 돌아가던 중 충주에 이르러 적에게 참살된 사헌부감찰 이희룡(李希龍)과 이 비보를 듣고 시체를 찾으러 와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아들 문진(文軫), 시아버지와 남편의 시체를 찾으려다가 죽은 김씨의 사적을 기록한 것으로, 세 사람의 사실을 서술하여 충·효·열을 높이 찬양하였다.

이밖에도 임진왜란 때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권복흥(權復興)의 사적을 기록한 「권공행장(權公行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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