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루가치 살해사건 ( )

고려시대사
사건
1232년(고종 19), 몽골이 고려에 배치한 다루가치를 고려인들이 살해한 사건.
사건/전쟁
발발 시기
1232년(고종 19)
종결 시기
1232년(고종 19)
관련 국가
몽골
관련 인물
민희|최자온
내용 요약

다루가치 살해사건은 1232년(고종 19) 몽골이 고려에 설치한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고려인들이 살해한 사건이다. 다루가치는 몽골의 관직 이름으로서 초기 점령지의 시정관(施政官)으로 창설했다가, 원나라에서는 지방 행정 관청의 감독관으로 배치하였다. 몽골의 기록에 의하면, 1231년(고종 18) 대몽강화(對蒙講和)가 이루어지면서 몽골에서 다루가치를 고려에 배치하고 철수했으며, 이듬해에 고려인들이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기사가 있다.

정의
1232년(고종 19), 몽골이 고려에 배치한 다루가치를 고려인들이 살해한 사건.
배경 및 발단

다루가치(達魯花赤)주3의 관직 이름으로서 초기 점령지의 시정관(施政官)으로 창설했다가, 원나라에서는 지방 행정 관청의 감독관으로 설치되었다.

1231년(고종 18) 몽골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義州)를 비롯한 북방 지역을 휩쓸고, 서경(西京)을 거쳐 개경(開京)을 포위하였다. 그리고 별동 부대를 남하시켜 광주(廣州) · 충주(忠州) · 청주(淸州) 등지를 유린하였다. 이것이 바로 몽골의 제1차 침입이다.

고려는 왕족 회안공(淮安公) 왕정(王侹)을 몽골의 장수 살리타이[撒禮塔]가 주둔하고 있던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 주4에 보내 주5를 맺었다. 이때 살리타이는 개경과 그들이 주6 주군(州郡)에 다루가치 72인을 두고 물러갔다.

경과 및 결과

1232년(고종 19) 다루가치들이 고려에서 모두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내용은 모두 주7『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 등 원나라의 주8에서만 나올 뿐 고려 쪽 사료에는 보이지 않아 확실히 믿을 수는 없다. 몽골이 경략한 주1이 북방의 20개 정도인데, 72인의 다루가치는 그 수가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도 믿기 어렵다.

그러나 『고려사』 세가(世家)에는 1232년 5월 “ 북계(北界)의 용강(龍岡) · 선주(宣州, 지금의 宣川)에 다루가치 5인이 왔다.”라고 하였고, 그해 7월에는 “내시 윤복창(尹復昌)을 북계의 여러 성에 보내 다루가치의 주9를 빼앗게 했는데, 선주에서 다루가치가 그를 사살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원이 다루가치를 배치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리고 그들의 행패가 심했음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해 8월 기록에는 “서경순무사(西京巡撫使) 민희(閔曦)가 사록(司錄) 최자온(崔滋溫)과 더불어 다루가치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는데, 서경 사람들이 이를 듣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 서경이 평주(平州)처럼 몽골 군사에게 전멸당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를 보면, 다루가치가 살해당한 것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다루가치 살해사건은 고려의 몽골에 대한 저항 의식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72인의 다루가치를 모두 살해했다는 중국 측 사료의 내용은 다분히 과장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역옹패설(櫟翁稗說)』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
『원사(元史)』

단행본

윤용혁, 『고려대몽항쟁사연구』(일지사, 1991)

논문

강재광, 「몽고의 제1차 침공과 피함 북계 14대성의 항전」(『한국사연구』 146, 한국사연구회, 2009)
고명수, 「고려 주재 다루가치의 치폐 경위와 존재 양태: 몽골의 고려정책 일 측면」(『지역과 역사』 39, 부경역사연구소, 2016)
김보광, 「고려-몽골 관계의 전개와 다루가치의 치폐 과정」(『역사와 담론』 76, 호서사학회, 2015)
김보광, 「고려 내 다루가치의 존재 양상과 영향: 다루가치를 통한 몽골 지배방식의 경험」(『역사와 현실』 99, 한국역사연구회, 2016)
주채혁, 「고려 내지의 달로화적 치폐에 관한 소고」(『청대사림』 1, 청주대학교 사학회, 1974)
池內宏, 「高麗に駐在した元の達魯花赤について」(『東洋學報』18-2, 東洋學術協會, 1929)
주석
주1

주와 현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유라시아 대륙 중앙부, 몽골고원의 북쪽에 있는 인민 공화국. 13세기 칭기즈 칸의 통솔 아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여, 중국 대륙과 주위 여러 지역을 평정하여 원(元) 제국을 이루었으나, 그 후 세력이 약화되어 중국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1921년 소련의 원조로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고 1924년 공화국이 되었다. 집단 경영에 의한 농목업이 발달하였고, 양모ㆍ피혁 따위를 주로 생산하며, 주민은 몽골인이고 주요 언어는 몽골어이다. 수도는 울란바토르, 면적은 156만 5000㎢. 우리말샘

주4

중국 당나라 때에, 6도호부 가운데 북쪽 몽고고원의 돌궐 등을 다스리기 위하여 둔 도호부. 우리말샘

주5

싸우던 두 편이 싸움을 그치고 평화로운 상태가 됨. 우리말샘

주6

침략하여 점령한 지방이나 나라를 다스리다. 우리말샘

주7

중국 원대의 역사책으로 명나라 때에, 송염(宋濂), 왕위(王緯) 등이 황제의 명에 따라 모아 엮은 원나라의 사서.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의 하나로, 본기(本紀) 47권, 지(志) 53권, 표(表) 6권, 열전(列傳) 97권으로 되어 있으며, ≪고려전≫이 들어 있다. 태조 3년(1370)에 간행되었다. 우리말샘

주8

역사 연구에 필요한 문헌이나 유물. 문서, 기록, 건축, 조각 따위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9

활과 화살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집필자
신안식(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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