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시는 병선군(兵船軍)을 관장하는 관청이었는데, 1391년(공양왕 3)도당(都堂)에서 사수시의 속관으로 한나라 도선령(都船令)의 예에 따라 도선지유(都船指諭)를 설치하고, 제나라 관선전군의 예에 의하여 관선전군을 설치하라는 주청에 의하여 설치를 보게 되었다.
관선전군은 고려말이래 대선단을 거느리고 출몰하던 왜구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그뒤 조선시대에 와서는 1403년(태종 3) 사수시의 후신인 사수감(司水監)이 사재감(司宰監)에 흡수되면서 주로 조운(漕運)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415년 보충군의 창설로 사재감의 수군이 보충군 소속으로 이관되었는데, 관선전군이 이때 보충군에 속하였는지 조군(漕軍)에 속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관선전군은 처음의 설치목적과는 달리 조운의 역에 동원되는 수군을 담당하였으며, 조운의 물량이 많을 때에는 양민의 배도 강제 징발하는 등 민폐를 많이 끼쳤다.
이와 같은 관선전군의 임무변천은 고려말 왜구의 토벌을 위하여 조직된 수군이 결국 과중한 역에 시달리면서 신량역천화(身良役賤化)하는 과정과 일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