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지돌덧널무덤

고대사
개념
구덩식의 돌덧널을 매장시설로 하고 돌덧널 주위와 상부에 돌을 쌓아 일정한 규모의 돌무지 봉분을 조성한 무덤. 적석석곽분 · 적석석곽묘.
이칭
이칭
적석석곽분(積石石槨墳), 적석석곽묘(積石石槨墓)
정의
구덩식의 돌덧널을 매장시설로 하고 돌덧널 주위와 상부에 돌을 쌓아 일정한 규모의 돌무지 봉분을 조성한 무덤. 적석석곽분 · 적석석곽묘.
개설

적석석곽묘(積石石槨墓) 또는 적석석곽분(積石石槨墳)이라고도 한다. 돌무지돌덧널무덤은 돌덧널의 구조로만 본다면 일반 돌덧널무덤과 같으나 분구(墳丘) 내에서의 위치에 차이가 있다. 일반 돌덧널무덤은 지면 아래에 장방형 토광을 파고 그 사면벽에 기대어 돌을 쌓아 덧널을 만드는데 비해, 돌무지돌덧널무덤은 지면 위에 돌을 쌓아서 내부가 일반 돌덧널과 같은 형상을 만든 것이다.

내용

돌무지돌덧널무덤은 돌을 쌓는 상태에 있어서 내면은 수직으로(약간 내경하여) 올라갔으나 외면은 의지할 벽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적석부의 폭이 넓어지면서 곡면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일반 돌덧널과 구별된다. 또한 돌덧널의 외형이 돌무지무덤과 같은 돌무지를 이루지만 그 내부가 장방형의 돌덧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돌무지무덤과도 구별된다.

고구려 초기에 유행했던 원형, 네모모양의 무기단식 돌무지무덤 중에는 장방형 돌덧널을 매장시설로 한 것들이 많다. 이것은 돌무지분구를 조성하고 구덩식의 돌덧널을 그 안에 조성하는 방식으로 축조된 무덤이므로 일종의 ‘돌무지분구묘’라 불러야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돌무지돌덧널무덤은 구덩식돌덧널을 지하나 지상에 설치하고 그 매장시설을 중심으로 돌무지봉분을 조성한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고구려지역의 돌무지분구묘들은 돌덧널을 매장시설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돌무지돌덧널무덤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돌무지돌덧널무덤의 존재는 영남대학교에서 칠곡 구암동고분군을 발굴하면서 알려졌다. 구암동 제56호분은 주분과 북분이 서로 결합된 일종의 표형분(瓢形墳)인데 주분의 돌무지봉분 밑지름 18m, 높이 4.5m로 규모가 비교적 큰 돌무지돌덧널무덤이다. 각각의 봉분에는 이혈합장형(異穴合葬形)의 세장방형 돌덧널 2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표형분을 축조하는 방식이나 매장시설을 중심으로 돌무지봉분을 만드는 양상은 신라의 중심적인 경주지역 돌무지덧널무덤과 유사하지만 매장시설은 경주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세장한 돌덧널이다. 기본적으로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낙동강유역 여러 지역의 매장시설로서 가장 선호된 것이 돌덧널이었던 까닭에 돌무지돌덧널무덤이 조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칠곡 다부동고분군에서도 돌덧널을 매장시설로 하고 원형의 돌무지를 조성한 예가 발견되었고 안동 수곡동고분군에서도 11자형으로 배치된 이혈합장형의 매장시설을 중심으로 얇게 돌을 쌓은 봉분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돌무지의 양에 있어서는 경주지역 고분군의 돌무지덧널무덤이나 구암동고분군의 돌무지돌덧널무덤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돌무지돌덧널무덤의 형태를 어느 정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같은 범주에 넣어도 좋을 것이다.

돌무지돌덧널무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면 위에 축조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진 돌무지돌덧널무덤은 주로 낙동강 서북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고분과 인근 지역인 안동군 일직면의 조탑리고분을 들 수 있다.

이들 고분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① 우선 고분이 능선상 또는 구릉의 돌출부의 높은 위치에 축조된다.

② 한 분구 내에 적어도 2기 이상의 주체시설이 들어간다. 조탑리의 경우는 딸린덧널과 독〔甕棺〕을 포함해 모두 5기가 축조되었다.

③ 분구축조법에 있어서는 먼저 축조된 돌덧널만의 소형 분구를 만들고, 그 다음에 돌덧널이나 다른 주체시설이 추가될 때마다 기존의 분구를 포함하는 대형의 분구를 형성해나가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④ 여러 주체시설 중 중심이 되는 대형의 돌덧널 1기 또는 2기 정도가 돌무지돌덧널의 구조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뚜껑돌은 여러 매의 판상석을 사용하고, 단벽 1벽은 뚜껑돌을 놓은 뒤 밖에서 쌓은 앞트기식〔橫口式〕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⑤ 축조연대는 4∼5세기경에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돌무지돌덧널무덤은 낙동강 서북지역에만 특징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압록강·대동강·한강·금강 유역지방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들 돌무지돌덧널무덤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을 어느 정도 모방하는 가운데 돌덧널을 매장시설로 사용하게 된 묘제로서 주로 신라의 북편, 혹은 북서편 지역에서 성행하였다고 믿어진다. 그리고 묘지로서의 지형선택, 장방형 돌덧널을 지면 위에 둔다는 점, 독 등과 더불어 다장(多葬)을 이룬다는 점 등에서 양자강유역의 토돈묘(土墩墓)와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의성탑리고분』(김재원·윤무병, 국립박물관, 1962)
「임하댐 수몰지역 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윤용진, 경북대학교박물관, 1989)
「가야묘제의 연구」(이은창,『연구논문집』22, 효성여대, 1980)
「구암동고분발굴조사보고」(이은창, 영남대학교박물관, 1978)
「조탑동고분발굴조사보고」(진홍섭,『안동지구고적조사보고서』2,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975)
「長方形石室の系統に關する試論」(姜仁求,『岡崎敬敎授退官記念論集』上, 1987)
집필자
김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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