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3책. 목판본. 1884년(고종 21) 아들 정목(庭穆)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이돈우(李敦禹)의 서문과 권말에 강진규(姜晉奎)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320수, 권3∼5에 소 1편, 서(書) 43편, 변 1편, 서(序) 4편, 기 1편, 발 8편, 고유문(告由文) 2편, 제문 32편, 묘지명 1편, 권6에 유사 2편, 권7은 부록으로 만사 3수, 제문 5편, 행장 1편, 묘지명 1편, 묘갈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한가한 생활을 읊은 것으로 서정적이다. 「여강도중(廬江道中)」은 아침 안개가 걷힌 강변의 풍경과 말울음 소리에 하늘로 치솟는 학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 묘사하고 있다. 「추야독음(秋夜獨吟)」은 기러기가 울며 은하를 날고 서풍의 찬바람과 멀리서 들려오는 규방의 다듬이 소리에 깊어 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읊고 있다. 그의 시는 성당(盛唐)의 시풍을 연상시킨다.
소의 「청충재권선생승무소(請冲齋權先生陞廡疏)」는 중종 때의 명신이자 학자인 권벌(權橃)의 문묘배향을 청원한 상소이다. 그는 이 상소에서 권벌의 학문·절의·사업을 이황(李滉)·정경세(鄭經世) 등의 말을 인용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서(書)에는 유치명(柳致明)과 문답한 것이 많은데, 특히 석전(釋典)과 석채(釋菜) 및 가묘(家廟)의 제의(祭儀)에 대해 논변한 것이 주목된다.
변의 「정주문자위소진찬취설변(程朱文字爲蘇陳竄取說辨)」에서는 선현의 문자는 세도(世道)나 사문(斯文)을 위해서 표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정자(程子)의 글이 『동파집(東坡集)』에 들어 있고 주자의 글이 『용천집(龍川集)』에 잘못 들어가 있는 것을 지적해, 이는 후인들의 편집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