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13책. 사본.
속표지에는 ‘동영문헌잠영록(東英文獻簪纓錄)’이라 되어 있다. 편찬자와 편찬 경위는 미상이다. 다만 각 권 머리에 “청성거사(靑城居士)가 취송헌(翠松軒)에서 찬집(撰集)”이라 되어 있다.
내용 중 1918년 대황제(大皇帝 : 고종)의 죽음을 기록했고, 햇수 옆에 ‘대정6년(大正六年)’이라는 주기(朱記)의 정정(訂正)이 있다. 이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편집되었고 그 뒤 일본인들의 교정이 있었던 듯하다.
각 인물의 특징적인 사적을 기사체로 서술하면서 때로는 논평을 가하였다. 각 책의 좌단(左端)에는 해당 성본(姓本)이 표시되어 사전의 기능을 감당하게 하였다.
권1에는 선계전주이씨(璿系全州李氏)·대황제황후사실급자손록(大皇帝皇后事實及子孫錄)·각원묘소기(各園墓所記)·각왕비국혼성씨(各王妃國婚姓氏), 권2에는 한산이씨(韓山李氏) 등 7본(本), 권3에는 이(李)·한(韓)·신(申)씨, 권4에는 김(金)씨, 권5에는 정(鄭)·박(朴)씨 등이 실려 있다.
권6에는 윤(尹)·조(趙)·홍(洪)씨, 권7에는 유(柳)·최(崔)·권(權)·남(南)씨, 권8에는 심(沈)·서(徐)·성(成)·허(許)·강(姜)·유(兪)·장(張)·구(具)씨, 권9에는 안(安)·오(吳)·민(閔)·임(任)·황(黃)·송(宋)·원(元)씨, 권10에는 조(曺)·정(丁)·우(禹)·백(白)·엄(嚴)·양(梁)·노(盧)·경(慶)·고(高)·채(蔡)·여(呂)·곽(郭)·어(魚)·목(睦)·손(孫)·임(林)·신(愼)·신(辛)씨 등이 실려 있다.
권11에는 나(羅)씨 외 54성(姓), 권12에는 벽성(僻姓)·복성(複姓)·삼한고성(三韓古姓)·보유(補遺)·은선(隱仙)·석교(釋敎)·후비(后妃)·열녀(烈女)·여현(麗賢), 권13에는 여현·단군계록(檀君系錄), 고조선과 삼한의 군왕(君王), 조선급삼한재이징험록(朝鮮及三韓災異徵驗錄) 등이 실려 있다.
단군조선의 역대 군왕을 기록했고 역대 왕조의 군왕에 대한 간결한 사적 소개와 논평 등이 특징적이다. 또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죽음, 정조의 즉위와 정치 상황 등을 설명하면서 서당(西黨)의 횡포였다고 신랄히 비판하였다. 흥선대원군의 경우 경복궁 중건에 따른 경제적 폐해를 기술하고 실각하는 경위를 약술하였다.
고종 이후의 일을 특히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1901년(고종 38) 기사에서는 일본의 핍박을 피하고 주변에 있는 각국 공관(公館)의 호위를 기대하면서 터가 협소하고 전각이 드문 경운궁(慶運宮)으로 이어(移御)한 행위를 구차하다고 비판하였다.
이어 덕정(德政)은 베풀지 않으면서 매관매직으로 돈을 모으고 명성황후(明成皇后)의 개장(改葬)과 자신의 능터를 위해 백성에 대한 해독을 백골(白骨)에까지 미쳤다고 비판하였다. 동학군에 대해 적(賊)·비(匪) 등의 용어를 사용했으나 왕실과 세족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인물 선정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고 내용도 충실한, 인명사전으로서 주목할 만한 선례를 보인 저작이다. 장서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