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2m. 너비 0.75m. 198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망경암의 자연 암벽에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의 감실(龕室 : 궁전 안의 옥좌 위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을 만들고 그 안에 불좌상을 새긴 것이다. 주위에는 군데군데 암석 면을 다듬어 14군데에 명문을 새기고 있다.
그중에 고종 광무(光武) 원년(1897년)에 이규승(李奎承)이 관음상(觀音像)을 새기고 불사(佛事)를 일으켰다는 글귀가 있어 이 작품을 1897년에 제작된 관음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像) 자체의 형식이 관음이 아닌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이 불좌상이 그 명문에 해당하는 작품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이곳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임금이 친히 이곳을 방문하여 나라와 백성의 안녕과 수복을 빌었던 곳이다. 그리고 세조대에는 평원대군(平原大君)과 제안대군(齊安大君)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칠성단을 만들고 칠성재(七星齋)를 지냈다 하여 지금도 이곳을 칠성대(七星臺)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이곳의 배경은 이 마애불좌상의 대강의 제작 시기를 가늠하는데 도움을 준다.
현재 불상의 표면이 정돈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각법(刻法 : 새김 법)도 거칠어 세부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분명하지 않다. 얼굴은 넓적하고 평면적이지만 이목구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다.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는 두터워 신체의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왼손은 손바닥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에 대고 있고, 오른손은 마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과 같은 모습으로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오른쪽 발목 위에 올려놓고 있다. 양어깨와 길상좌(吉祥坐 :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다음 오른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자세)로 결가부좌한 양 무릎은 양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각법이 치졸하고 각 부분의 표현이 정제되어 있지 않은 조선시대의 불좌상이지다. 하지만 주변에 새겨져 있는 명문들과 고려 말 이후 신앙 도량으로 지속되어 온 칠성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