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효(明曉)’라고도 한다. 당(唐)나라에서 유학하다가 700년(효소왕 9)에 신라로 귀국하였다.
그는 귀국에 앞서 이무첨(李無諂)에게 밀교 경전인 『불공견삭다라니경(不空羂索陀羅尼經)』의 번역을 요청하였다. 이 경전의 번역이 이 해 8월에 끝나자 이 것을 가지고 돌아와서 『해인삼매론(海印三昧論)』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화엄경』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해인삼매론』은 서문·서시(序詩)·논(論)·해인삼매도(海印三昧圖)·게송·회향게(廻向偈) 등으로 구성된 짧은 저술이다. 7언 28구 196자로 된 게송을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반시(槃詩) 형태의 해인삼매도는 흔히 의상(義湘)의 법계도(法界圖)와 비교된다.
법계도가 가로 15행, 세로 14행의 직사각형인데 비하여, 해인삼매도는 가로·세로 각각 14행의 정사각형이다. 그리고 법계도가 인도(印道)의 방향이 중앙으로부터 왼쪽을 향해서 돌아가게 되어 있음에 비하여 해인삼매도는 그 반대로 되어 있다.
명효는 『해인삼매론』에서 소박하고 교훈적인 글을 담아 수행자의 여설(如說) 수행을 강조하였는데, 화엄사상을 밀교적 시각에서 해석한 특징이 보인다. 따라서 명효의 불교사적 위치는 화엄과 밀교의 겸학에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