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무인집권기 수선결사의 제2세 사주인 진각국사(溪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의 시와 산문 등을 수록한 문집이다. 무의자는 혜심의 자호(自號)이다. 고간본(古刊本)은 전하지 않고 근대에 대학 노트에 펜으로 필사한 필사본만이 전하고 있다. 편찬자나 편찬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세주(細註)에서 『조선불교통사』(1918년 간행)에 수록되어 있는 글과 통도사 현판의 내용을 초록하였다고 한 것으로 볼 때 1920년대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생각된다. 1940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간행한 『조계진각국사어록』에도 다른 자료에서 모은 혜심의 시문 52편을 부록으로 수록하고 있는데, 일부 글이 겹친다.
2권 1책의 필사본으로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을 저본으로 하고 월정사본 『조계진각국사어록』의 부록을 대교본으로 하여 새롭게 편집된 판본이 『한국불교전서』 제6책에 수록되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고마자와대학 소장본의 복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상권에는 시 50편이 수록되어 있고, 하권에는 시 126편과 찬(讚) 5편, 명(銘) 6편, 전(傳) 2편, 기(記) 1편, 서(序) 1편, 발(跋)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학인이나 재가 신자들에게 주는 시, 자연 환경이나 어떤 일, 혹은 사찰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은데, 내용은 대부분 수행자의 태도와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하는 선시(禪詩)들이다. 일부 시에는 몽골 침입으로 인한 현실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국난 극복 의식도 보이고 있다. 유생에게 주는 「증서생시(贈書生詩)」에서는 어떤 선비가 불교를 비난하는 것을 반박하여, 옛 명인들은 도의 원리를 바르게 통달하여 유교와 불교가 돌아가는 길이 하나임을 알았다는 것과, 한 쪽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교와 불교를 구분하는 시비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시의 형식은 대부분 7언시와 5언시이지만, 한 글자부터 열 글자까지 글자 수를 늘려 가며 지은 시(「차금성경사록종일지십운(次錦城慶司祿從一至十韻)」)와 글자 수에 구애되지 않은 시(「역계(譯誡)」 · 「고분가(孤憤歌)」)도 있고, 뒤에서부터 읽어도 되는 회문시(回文詩)(「사시유감(四時有感)」 · 「숙팔전사동재차이경상운(宿八嶺寺東齋 次李敬尙韻)」) 등도 있다.
찬은 『원각경(圓覺經)』과 『금강경(金剛經)』, 관음보살, 그리고 9산선문의 조사와 스승인 보조국사 지눌에 대하여 찬송한 것으로, 특히 문도의 청으로 지은 「혼원상인청원각경찬(混元上人請圓覺經讃)」에서는 『원각경』 각 장의 요지를 14수의 7언 절구로 표현하였다.
명은 보살을 지향하는 수행 태도를 노래한 「좌우명(座右銘)」과 「대인명(大人銘)」을 비롯하여 수선사와 복천사(福川寺) 종의 명문, 승려 운기(雲其)와 재가신자 정분(鄭奮)의 수행처에 대한 명문들이다.
전 2편은 대나무와 얼음을 수행자로 가탁한 글로, 「죽존자전(竹尊者傳)」에서는 수행인의 높은 절개와 청백한 덕행을 대나무에 비유하여 자세히 기술하였고, 「빙도자전(氷道者傳)」에서는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지 않고 발로 세속의 티끌을 밟지 않으며, 겨울에도 화로를 가까이하지 않는 엄격한 수행을 하면서 선문답에도 걸림이 없는 수행자를 얼음에 비유하였다.
「상주보기(常住寶記)」에서는 국난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살림이 어렵고 사찰의 재정도 어려운 현실에서 국가에서 재(齋)를 올리기 위해 내린 곡식을 춘궁기에 민간에 빌려주고, 수확기에 약간의 이식(利殖)을 받아 사찰 재정에 활용하는 상주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뒷부분에는 혜심 자신이 『선문염송(禪門拈頌)』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과 스승인 지눌이 찬술한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간행할 때 지은 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한국불교전서본에는 이 두 편의 글은 생략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