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태조 7)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처음은 현의 동쪽에 건립하였다가 그 뒤 북쪽으로 옮겼는데, 이건한 뒤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1692년(숙종 18) 부사 김몽상(金夢上)이 향로산(香爐山) 서쪽으로 다시 옮겼으나 지대가 습하여 1834년(순조 34) 이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876년과 1884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고, 1897년(고종 34) 군수 조병유(趙秉瑜)가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66년에 보수하였다. 1834년 김속(金涑)이 쓴 『향교이건기(鄕校移建記)』를 통해 무주의 열악한 상황을 알 수 있다. 무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사대부가 부족하고 무주향교 건물도 방치되어 유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무주에 부임한 수령들에 의해 무주향교가 확장 또는 이건되거나 중수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5칸과 측면 2칸의 명륜당,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재(東齋) 양사재(養士齋)와 서재(西齋) 전사재(典祀齋), 교직사(校直舍)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도 지역 내 많은 학자들의 회합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요 학교를 통해 교육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대성전은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