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조선초경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 부사 최기(崔沂)가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 중 1602년 중창 당시의 건물은 대성전뿐으로, 1821년(순조 21) 부사 이현성(李玄姓)이 중수하였다. 그 밖의 건물들은 이후에 중건된 것이다.
이 향교는 영남지방에서 경주향교 · 진주향교와 함께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맞배지붕의 목조기와로 된 대성전과 명륜당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동무(東廡) · 서무(西廡), 팔작지붕의 2층 누각인 정문 풍화루(風化樓), 개복청(改服廳) · 전교실(典校室) · 수복청(守僕廳) · 제기고(祭器庫)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봄 · 가을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