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초명은 박승업(朴承業),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 박은(朴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인량(朴寅亮)이고, 아버지는 박무(朴懋)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장령·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1599년 공론에 좇지 않는다 하여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을 탄핵, 파면시켰으나 홍여순이 다시 등용되자, 사헌부집의 김신국(金藎國), 사간원사간 송일(宋馹) 등과 함께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강릉부사에 임명되었는데 강원도시(江原道試)에 부정이 있었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장령에 서임되고 다시 동래부사로 나갔는데 무고에 관련되어 계속적인 탄핵을 받았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박경업에 의하여 탄핵을 받았던 공신들의 주장에 의하여 일시 유배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28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철산가도(椵島)에 진을 치고 우리나라에게 후금을 칠 것을 강요하자 감군접반사(監軍接伴使)에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그 뒤 동지중추부사로 승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