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중익(仲翼), 호는 노포(老圃). 대구 출생. 할아버지는 박명리(朴命履)이고, 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박성수(朴聖洙)이며,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로 홍필구(洪必龜)의 딸이다.
1795년(정조 19)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1805년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고, 이어 사헌부감찰을 거쳐 1809년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나갔으며, 그 뒤 부교리·동부승지·호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안변부사가 되었다.
그 뒤 한성부우윤을 비롯하여 부총관동지의금부경연특진관(副摠管同知義禁府經筵特進官) 등을 역임하였다. 남포현감으로 있을 때 선세(船稅)가 과중하여 백성들이 곤경에 빠져 있음을 알고 조정에 건의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하였다.
안변부사로 있을 때도 송사(訟事)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819년 채제공(蔡濟恭)의 신원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82세로 죽자 왕이 사제문(賜祭文)을 내렸다.
저서로는 『노포문집(老圃文集)』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