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룡(景龍), 호는 덕은(德隱) 또는 죽계(竹溪). 서울 출신. 서흥부사(瑞興府使) 박종여(朴宗輿)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로 이규복(李奎復)의 딸이다. 할아버지 박윤원(朴胤源)에게 글을 배웠다.
1820년에 문과(文科)에 합격, 1822년에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이듬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거쳐 사과(司果)·빙고별제(氷庫別提)를 지냈다. 이어서 사헌부감찰·돈녕부판관(敦寧府判官)·예산현감·문화현령(文化縣令) 등을 지냈다.
1829년 가평군수를 거쳐 1833년 거창부사·순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령으로 있는 동안 실정(失政)을 많이 고쳐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특히 순흥부사로 있을 때에 2만6000여석의 허위로 보고된 환곡(還穀)을 정리하여 부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글씨에 뛰어나 금석문자도 남아 있다. 저서로는 『덕은유고(德隱遺稿)』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