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수 ()

유교
인물
조선후기 가평군수, 거창부사, 순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경룡(景龍)
덕은(德隱), 죽계(竹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7년(정조 21)
사망 연도
1841년(헌종 7)
본관
반남(潘南)
출생지
서울
주요 관직
가평군수|거창부사|순흥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가평군수, 거창부사, 순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룡(景龍), 호는 덕은(德隱) 또는 죽계(竹溪). 서울 출신. 서흥부사(瑞興府使) 박종여(朴宗輿)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로 이규복(李奎復)의 딸이다. 할아버지 박윤원(朴胤源)에게 글을 배웠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0년에 문과(文科)에 합격, 1822년에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이듬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거쳐 사과(司果)·빙고별제(氷庫別提)를 지냈다. 이어서 사헌부감찰·돈녕부판관(敦寧府判官)·예산현감·문화현령(文化縣令) 등을 지냈다.

1829년 가평군수를 거쳐 1833년 거창부사·순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령으로 있는 동안 실정(失政)을 많이 고쳐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특히 순흥부사로 있을 때에 2만6000여석의 허위로 보고된 환곡(還穀)을 정리하여 부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글씨에 뛰어나 금석문자도 남아 있다. 저서로는 『덕은유고(德隱遺稿)』 3권이 있다.

참고문헌

『덕은유고(德隱遺稿)』
『순조실록(純祖實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