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건중(健仲). 박임종(朴林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정랑 박조년(朴兆年)이고, 아버지는 사간 박소(朴紹)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사부(洪士俯)의 딸이다. 딸이 선조비 의인왕후(懿仁王后)이다.
고려 말 명문의 후예이다. 아우 박응남(朴應男)과 같이 성제원(成悌元)의 문하에서 배웠다. 1555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다음 해에 의금부도사로 천거되었고, 1559년에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가 되었으나 위법사건에 관련되어 면직되었다.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안음현감(安陰縣監)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는데 양모상(養母喪)을 당하여 사임하였다.
1565년 다시 기용되어 돈녕부주부·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를 거쳐 용인현령이 되었다. 1569년 딸이 왕실과 정혼되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승진되고, 11월에 중전에 오르자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가 되었으며, 그 뒤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겸직하였다.
왕비의 아버지였지만 조금도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고 마음을 편히 갖고 고요히 함으로 자신을 지켰으며 집안 생활이 사치스럽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가 국구(國舅)인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의(靖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