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 출생. 1917년 수하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에서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는 이유로 수하공립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였다. 이로 인해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였다.
1923년 휘문고보 제4학년을 수료하고 같은 해에 일본 도지사(同志社)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동경유학시절 학생의 신분으로 신간회 경도지부장을 맡았다. 1929년 도지사대학 법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932년 경기도 부천군 사회과 주사로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하였다.
1945년 경기도청 식량과장을 맡았으나, 1946년에 신탁통치에 관한 문제에서 반탁운동에 참여하여 사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 뒤 잠시동안 고향인 부천에서 생활하면서 부천중학교를 설립하였다.
1947년에는 한강수리조합장으로 취임하였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민의원)에 당선(부천, 무소속)되었다. 부정선거로 기록되는 제3·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였으나, 1960년 제5대 국회의원(민의원)에 당선(무소속)되었고 민정구락부에 가입하였다.
그 뒤 국무위원(농림부장관)에 취임했으나 5·16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1963년에 정치를 그만두고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종로 천주교회 사목위원회 위원, 세종로 천주교회 사목위원회 고문, 역곡 천주교회 사목위원회 고문으로 종교활동에 전력하였다. 저서로는 『지봉한담(芝峰閑談)』(199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