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숙정(叔精). 아버지는 박세훈(朴世勳)이다.
음보(蔭補)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584년(선조 17) 호조정랑에 올랐고 1589년 재령군수로 재직 중 한준(韓準)·이축(李軸)·한응인(韓應寅)과 함께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고변하여, 그 공으로 형조참판으로 승진되고 또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되고 이어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졌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순검사(巡檢使)로 국내 여러 성의 수축을 담당하여 서울로 진군하는 왜적에 대비하였으나 왜병과 싸우다 도망한 죄로 파면, 이듬해 분호조판서(分戶曹判書)에서 다시 파면되었다가 뒤에 영남·호남 지방에 파견되어 군량미의 조달을 담당하였다.
1594년에는 진휼사(賑恤使)가 되어 구호에 필요한 쌀·콩 등의 신속한 조달대책을 상소하여 백성의 구제에 진력하였다. 1597년 순검사·선공감제조(繕工監提調)를 역임하고, 1599년에는 충훈부(忠勳府)의 쌀·소금 등을 사적으로 이용하였다 하여 한때 불우하였으며, 1600년 남이공(南以恭) 등의 파당행위의 폐해를 상소하였다가 집권층에 밉게 보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