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구(景久), 호는 회와(悔窩)·일우(一愚)·송담(松潭). 아버지는 부승지(副承旨) 박세성(朴世城)이다.
1689년(숙종 15)에 진사가 되고, 같은 해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이를 적극 반대하였다.
1697년 휘릉참봉(徽陵參奉)을 거쳐 부평현감(富平縣監)·황주목사(黃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704년 부평에 있는 민진표(閔震標)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 처의 장지(葬地)로 삼고, 이를 반대하는 민진표를 협박하여 자결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탄핵당하였다. 1721년 합천군수(陜川郡守)로 나아가 다음 해 죽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반남박씨오세유고(潘南朴氏五世遺稿)』인 시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