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교백(喬佰).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박장원(朴長遠)이고, 아버지는 군수 박선(朴銑)이며, 어머니는 형조참판 이후산(李後山)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16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에 임명되어 신래급제자(新來及第者: 새로이 급제를 한 인물)의 사관분속(四館分屬: 성균관·예문관·승문원·교서관에 나누어 소속시킴)에 따른 회자(回刺: 서로 헐뜯음)의 폐습을 과감히 철폐하고자 하였다.
급제한 뒤 4년 만에 병으로 죽어 벼슬은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그쳤다. 평소 언론이 준엄하면서 발라 당파에 휩쓸리지 않아 이광좌(李光佐)·최창대(崔昌大) 등은 박태한을 선배로 존경하였다.
저서로는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