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필석(班弼錫)은 팔대진사가문(八代進士家門)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들이 과거에 급제하기만 하면 모두 죽는 이변이 있자, 어머니 박씨는 그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극구 만류한다. 그러나 필석의 고집으로 과거 길을 떠나던 중 한 처녀를 만나 후일을 기약한다.
또 황성에서는 김 노파의 말에 따라 여복으로 변장하고 김 승상의 딸을 만나 주1을 이룬다. 그러나 김 소저가 이미 이 승상의 아들과 정혼하고 부정으로 그를 과거에 급제시켜 임금님 앞에서 혼례를 치르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녀를 통하여 시제(詩題)를 미리 알아 급제하여 김 소저를 아내로 얻는다. 귀향길에 그는 처음 만난 소저와도 혼인하여 두 부인과 함께 금의환향하며, 또 한 노승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하게 된다.
그 뒤, 폐읍(廢邑)이 된 표수읍(表狩邑)의 태수로 부임한 필석은 주2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또한 신관 사또를 살해하는 마귀가 천년 묵은 여우와 지렁이의 간계임을 알고 불을 놓아 그것을 죽여 명관이 된다.
그러나 한 늙은 여우는 그곳을 도망하여 중원 황제의 애첩으로 둔갑하여 병을 핑계로 하여 필석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요구한다. 필석은 한 노파의 지시를 받아 사나운 매와 개를 구하여 둔갑한 여우를 살해한다. 돌아오는 길에 용궁에 들러 용왕의 아들을 구해준 공으로 다시 용왕의 딸을 얻어 아내로 삼는다.
고국에 돌아온 필석은 영의정에 제수되고 대적(大賊)에게 빼앗긴 애첩 용왕의 딸을 다시 찾아 용왕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설화들이 수용되어 있는데, 먼저 등과하면 횡사하는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나 산중 여인의 방책에 따라 반필석 대신 술 취한 노승으로 하여금 이방 부자의 보복을 받도록하여 연명하는 부분에서는 연명(延命)설화의 수용 양상이 나타난다. 이는 「홍연전」, 「십생구사」 등과 같이 주인공이 현실 속에서 연명의 방법을 찾아 나서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연명계 저승 체험담의 후기적 변모 양상이기도 하다.
그 외에 노호와 구인(蚯蚓)이 원혼이 된 아랑형 설화(阿娘型說話), 거북의 보은설화, 도둑을 퇴치하는 지하국대적제치설화(地下國大賊除治說話) 등은 기존의 다양한 설화를 수용하는 가운데 작가의 풍부한 창의성을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여우가 황제의 애첩으로 둔갑한 이야기는 중국 신마소설(神魔小說) 「봉신연의」 속 천년 묵은 구미호가 나타나 달기를 잡아먹은 후 달기의 모습을 하고 주왕에게 접근하고 주왕은 달기의 미색에 빠져 폭군으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수용된 것이다. 이는 기존에 「봉신연의」의 주요 번안소설로 논의된 「서주연의」·「강태공전」·「소달기전」 외에도 화소나 모티브 차원에서 「봉신연의」가 다양한 변용을 통해 향유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