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6㎝, 가로 249㎝. 1892년 봉은사 감로왕도, 1898년 보광사 감로왕도와 동일한 도상에 의하여 제작된 작품이다. 1868년 흥국사 감로왕도에서 다소 변형된 경기 지역 감로왕도의 또 다른 도상을 대표하고 있다.
상단에는 동일한 모습으로 표현된 7여래가 합장을 한 채 정면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다. 좌측에는 상반신만 드러난 아미타삼존 일행이 구름 속에서 내영하고 있다. 그 아래로 왕후장상, 선왕선후 등의 모습이 보인다. 우측에는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 및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중단은 삼신불번(三身佛幡)을 늘어뜨리고 갖가지 음식과 모란꽃으로 장식된 제단 앞에서 스님들과 상주들이 함께 모여 재 지내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오른쪽에는 천막 안에서 독경하는 스님들과 큰 북, 바라를 치고 승무를 추며 의식을 행하는 작법승들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들 아래로는 커다란 두 마리의 아귀가 구름에 둘러싸인 채 합장하고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아귀의 좌우로 전개된 하단의 장면은 산악과 수목으로 장면을 분리하고 한 구획 안에 한두 장면씩을 그려 넣었다.
아귀의 왼쪽으로는 밭 가는 장면을 비롯하여 춤추고 노는 장면, 가재도구를 싸들고 고향을 떠나는 장면, 지옥문 앞에서 망자가 시왕의 심판을 받는 장면, 전쟁 장면, 집이 무너져 깔려 죽는 장면, 바위에 깔려 죽는 장면 등이 묘사되었다.
오른쪽에는 악사들의 반주에 맞추어 광대가 줄 위에 거꾸로 서서 묘기를 부리는 장면과 음식을 가득 차려 놓고 무당이 춤추며 굿하는 장면도 보인다. 이외에도 물속에서 아귀들이 구걸하는 장면을 비롯하여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장면, 높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1년 먼저 제작된 보광사 감로왕도의 도상을 거의 그대로 채택하여 동일한 도상을 보여 준다. 하지만 7여래의 상체를 좀더 드러나게 처리하느라 제단을 다소 아래쪽으로 묘사하였다. 그래서 제단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인물들 사이에 공간이 없어 답답한 느낌을 준다.
또 보광사본에서는 두 아귀 사이를 단색으로 처리하였지만 여기에서는 채운을 가득 그려 넣어 변화를 주었다. 재 의식을 행하는 장면의 바닥도 촘촘한 격자문으로 처리하여 전체적으로 복잡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 준다.
채색은 적색과 녹색 외에 황색·백색·청색 등을 사용하였다. 음영이 강하게 표현된 인물 표현은 당시 경기 지역 불화의 표현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