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이화(而華), 호는 노포(老圃). 백운서(白運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백인환(白仁煥)이고, 아버지는 백종관(白宗鸛)이며, 어머니는 김치서(金致瑞)의 딸이다. 백종학(白宗鶴)에게 입양되었다. 평안도 정주에서 살았으며, 이직보(李直輔)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1811년(순조 11)에 홍경래(洪景來)가 평안도의 가산(嘉山)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이듬해 격문(檄文)을 써서 각처에 돌려 창의기병(倡義起兵)하고는 모여든 민병(民兵)을 거느리고 관군과 합세하여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반란이 진압되자, 조정에서 공로를 참작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의 관위를 내렸으나 받지 않았고, 또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1814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에야 비로소 관계에 진출하여 벼슬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이르렀다. 문한(文翰)이 흡족하고 넉넉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뒤에 정주의 삼현사(三賢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老圃先生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