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은 제목을 포함해서 모두 312자로 이루어진 짧은 게송체(偈頌體) 발원문이다.
의상(義湘, 625~702)은 670년(문무왕 10)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관세음보살의 진신(眞身)을 만나기 위해 동해의 낙산(洛山)으로 갔다. 7일 동안의 기도 끝에 그는 관세음보살로부터 수기(授記)를 받고 671년에 낙산사를 창건하였다. 이 발원문은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기도했던 의상의 신앙 고백을 담은 발원문으로 알려져 있다.
'백화도량(白花道場)'은 관세음보살의 도량으로 백화산(白華山)에 있으며, 그 위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설법하고 있는 화장세계(華藏世界) 제13중(重)에 해당한다고 한다. 내용은 관세음보살을 관상(觀想)하고 본사(本師)로 모시며, 정토(淨土)에 왕생하기를 비는 것이다.
발원문은 관세음보살에게 머리를 숙여 귀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관세음보살과 저자 자신의 경지를 간략하게 비교하여 번뇌가 있고 없음,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차이를 찾는다. 이후의 내용은 관세음보살의 거울 가운데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신의 거울 가운데 있는 관세음보살이 소리를 내어 가피(加被)해 주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영원히 본사로 삼되,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이마 위에 인 것과 같이 자신도 관음대성을 이마 위에 올리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항상 관세음보살의 설법을 들으며, 관세음보살의 십원(十願) · 천수천안(千手千眼) · 대자대비(大慈大悲) 등을 자신도 동등하게 가져 원통삼매(圓通三昧)를 이룰 것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죽은 뒤에 관세음보살의 인도 아래 백화도량에 태어나 모든 보살들과 함께 바른 진리를 익히고, 마침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이루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 · 현대에 발표된 몇몇 연구에서는 이 발원문에 대해 위작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백화도량'이란 표현이 60권본 『화엄경』과 그에 대한 해석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의상보다 후대에 활동했던 징관(澄觀)이 80권본 『화엄경』을 해석한 이후에야 널리 사용되었다는 점, '원통삼매(圓通三昧)'가 의상이 죽은 후에 한역된 『수능엄경(首楞嚴經)』에 나오는 문구라는 점, 나아가 이 발원문에 담긴 사상이 의상의 다른 저술인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의 사상과 유사하지 않다는 점 등이 위작설의 근거로 제시되었다.
이 발원문은 1328년(충숙왕 15) 10월에 체원(體元, 128?~1338)이 해인사에서 원문의 절(節)을 세분하여 해석을 단 『백화도량발원문약해(白花道場發願文略解)』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각화사(覺華寺)의 성지(性之)가 검토하고 수정하여 1334년에 계림부에서 개정판을 간행하였다. 현존하는 모든 목판본은 이때 새로 펴낸 목판에서 인출한 판본으로, 모두 동일한 판복이다. 현재는 모두 9종의 판본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종 모두 완본(完本)이 아니라 결락된 부분이 있지만, 9종을 종합하면 완본을 재구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