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은 Harengula zunasi BLEEKER이다. 몸은 현저하게 옆으로 납작[側扁]하며 아래턱이 돌출하였고 위턱은 약간 패어 있다. 전어와 유사하나 등지느러미의 끝이 실처럼 연장되어 있지 않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몸빛은 등쪽이 청흑색이고 옆구리와 배쪽이 은백색이다. 몸길이는 15㎝ 정도이다. 우리 나라 서·남 연안의 내만에 많고 일본·중국·필리핀에도 분포한다. 외해에 면한 내만의 모래바닥에 군서(群棲)하면서 다소 하천에도 소하(溯河:강을 거슬러 올라 감)한다.
≪난호어목지 蘭湖漁牧志≫에는 ≪본초강목 本草綱目≫에 보이는 늑어(勒魚)를 소개하고 이를 한글로 ‘반당이’라고 기재하고 있고, 이 늑어가 우리 나라의 소어(蘇魚)라고 하고 있다. 5월에 어부가 발[簾]을 설치하여 잡는데 강화·인천 등지가 가장 성하다고 하였다.
그 형태의 설명에 있어서는 배에 여문 가시가 많다든가, 머리 밑에는 길고 날카로운 두 개의 뼈가시가 있다든가 하고 있는데 이는 의문시되는 점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토산조를 보면, 함경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도에서는 소어가 산출되는 지방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찍부터 남·서 해안에서 밴댕이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소어는 탕(湯)과 구이가 모두 맛이 있고 회로 만들면 맛이 준치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또 단오 후에 소금에 담그고 겨울에 초를 가하여 먹으면 맛이 좋다고 하였다.
밴댕이젓[蘇魚醢]은 진미의 하나로 취급되었으며 진상품이나 공상품(供上品)으로 쓰였다. 조선시대에 있어서는 밴댕이의 진공(進貢)을 관장하던 소어소(蘇魚所)라는 사옹원의 직소(職所)도 있었다. ≪난중일기 亂中日記≫ 을미년 5월 21일조를 보면 이순신은 밴댕이젓을 전복 및 어란(魚卵)과 함께 어머니에게 보내고 있다.
밴댕이는 어획량이 상당히 많다. 1987년에는 1만300M/T이 잡혔는데, 주로 안강망에 잡힌다. 그리고 1992년에는 3,597M/T, 1997년에는 5,593M/T이 어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