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발제도(擺撥制度)에 있어서 전달수단에 따라 기발(騎撥)과 보발로 구분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발은 각력(脚力)으로써 전달하는 송대(宋代)의 급각체(急脚遞)·보체(步遞)와 원나라의 보참(步站)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바, 발장 1인과 군정(軍丁) 2인을 배치하여 운영하였다. 원래 역참에 있어서 명령의 전달은 한편으로는 급주인(急走人)에 의해서도 이루어진 것 같다.
그것은 조선 초기 함경북도 경성지방의 참조직을 편성할 때의 관리를 살펴보면 사리(司吏) 2인, 일수양반(日守兩班) 5인, 관부(館夫) 5인, 급주인 5인, 마부(馬夫) 15인으로 조직된 데서 알 수 있다.
또한 역의 노비를 충정할 때도 전운노비(轉運奴婢)와 급주노비(急走奴婢)를 확보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 파발제의 설립으로 급주 대신 군정, 즉 보발이 그 구실을 대신하다가 점차 역참의 재정비를 통해 급주와 함께 구종(驅從)과 보종(步從)이 배치되었다. →기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