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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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둘째 아들인 왕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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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둘째 아들인 왕자.
내용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둘째 아들이다. 660년(의자왕 20)에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하게 되는 위기에 처하자, 의자왕과 태자 효(孝)는 일시 웅진성(熊津城 :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에 피신하였다.

이 때 왕자 태는 무리를 거느리고 사비성(泗沘城 :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에 남아 있으면서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성을 굳게 지켰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사비성은 함락되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은 의자왕과 태자 효 그리고 왕자 태·융(隆)·연(演) 및 대신·장사 88명, 백성 1만2807명을 당나라로 송치하였다. 태는 의자왕과 함께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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