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약 764m. 일명 ‘북주산성(北周山城)’이라고 한다.
당춘산(當春山) 정상에 위치하는 테뫼형[山頂式] 산성으로서, 성벽의 대부분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내부에서 성토(盛土)를 한 토축(土築)이며, 산의 형세가 험한 동북변과 서북변의 약 170m 구간은 석축으로 되어 있다.
당춘산 최고봉인 옥녀봉(玉女峰) 동쪽 140m 등고선을 따라서 북쪽에 성벽을 축조하고 있으며, 이 성벽 밖으로 다시 토축성벽을 두르고 있어서 이중성벽을 이루고 있다.
성안의 정상부는 대체로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춧돌로 보이는 자연석들이 흩어져 있고 토기조각들도 많이 있다. 토기조각은 주로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단선돌기대(單線突起帶)가 있는 회청색 연질토기편(軟質土器片)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청자편(靑磁片)·백자편(白磁片)도 다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걸쳐 사용되었던 산성임을 추측할 수 있다.
성의 정상부 동쪽에는 둘레 52m의 석축 봉수대(烽燧臺)가 잘 남아 있다. 봉수대에 쓰인 석재는 산성에 쓰인 석재와 같이 자연할석을 앞면만 다듬은 석재와 양면을 모두 다듬은 장방형 석재를 혼합해서 축조하고 있다.
가장 잘 남아 있는 남벽은 높이 1.6m, 상부의 너비 0.8∼1m, 하부의 너비 2m 내외이고 동서로 2∼3m의 문지(門址)가 남아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북산봉수(北山烽燧)’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성안에 3곳의 우물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발견할 수 없다.
이 산성은 위치로 보아서 서산의 전신인 백제시대 기군의 중심지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된 산성으로 보이며, 서해를 통해서 출입하는 선박들을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축조되어 있다. 규모가 700여m에 달하는데도 테뫼형의 산성을 이루고 있는 점에서 주목되며, 봉수대 터가 잘 남아 있어 중요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