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 토성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
이칭
약칭
토성리유적
유적
건립 시기
청동기시대
소재지
함경남도 북청군
내용 요약

북청토성리유적은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 일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 유물들이 자주 확인되었다. 1982년에는 청동기시대 집터 2기가 발굴되었다. 특히 2호 집터에서는 청동부채도끼, 청동끌, 청동방울, 청동토시 등 청동기 20여 점과 돌단검, 돌살촉, 돌도끼, 돌대패날, 돌끌, 갈색간그릇, 검정간그릇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금야-토성리 문화 유형을 대표한다.

정의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 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 유물들이 자주 확인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청해토성 안에서 돌도끼, 돌살촉과 함께 세형동검(細形銅劍)이 출토되었으며, 광복 후에도 용머리산에서 세형동검과 세형동모(細形銅鉾)가 수습되었다.

1982년 청동기시대 집터 2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1호 집터의 크기는 길이 540㎝, 너비 460㎝ 정도이다. 질그릇 조각, 돌살촉, 돌찔개살, 흙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집터는 화재로 무너졌으며 규모는 길이 900㎝, 너비 600㎝ 정도이다. 주거지 바닥에서 갈색간그릇, 검정간그릇, 돌반달칼, 돌단검, 돌살촉, 돌도끼, 돌대패날, 돌끌, 돌칼, 돌가락바퀴, 흙추, 치레거리 등이 출토되었다.

집터 서남쪽 구석에서는 방바닥을 파고 묻어 둔 청동부채도끼 1점, 청동끌 1점, 청동방울 1점, 청동토시 1쌍 2점, 원반형청동기 4점, 청동납작구슬 7점과 함께 옥돌구슬, 흑연 덩어리 등이 출토되었다.

형태와 특징

청동토시는 다른 유적에서 보기 어려운 유물로, 두께 1㎜ 미만의 얇은 청동판을 둥글게 말린 형태이다. 크기는 길이 100~125㎜, 앞쪽 지름 57㎜, 뒤쪽 지름 67㎜이다. 청동납작구슬은 7점이다. 두께 4㎜ 정도의 얇은 청동판으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지름 4㎜이며, 지름 2㎜의 구멍이 뚫려 있다.

토기는 28개체 이상 출토되었다. 구연부에 줄 구멍 장식이 있고 꼭지 모양 혹은 나무그루 모양의 손잡이가 붙은 납작밑 갈색간그릇이 다수를 차지한다. 검정간그릇도 있다. 갈색간그릇과 검정간그릇은 금야-토성리 문화 유형을 대표하는 토기들이다.

의의 및 평가

북청토성리유적(北靑土城里遺蹟)의 유물들은 함경남도 남대천 유역과 금야강 유역, 양강도의 허천강 유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를 금야-토성리 유형의 문화 주1라고 한다. 토성리 2호 집터의 청동기들은 금야유적에서 수집된 청동기 거푸집과 함께 청동기가 금야-토성리 문화 유형에 널리 보급된 것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단행본

梅原末治 · 藤田亮策, 『朝鮮古文化綜鑑』1-4(京都: 養德社, 1947-1966)

논문

김광혁, 「함경남도일대의 유적들에서 발견된 고조선의 청동기」(『조선고고연구』 1, 사회과학출판사, 2006)
안영준 · 김용간, 「함경남도 · 량강도일대에서 새로 알려진 청동기시대 유물에 대한 고찰」(『조선고고연구』 1, 사회과학출판사, 1986)
황기덕, 「두만강유역과 동해안일대의 유적 조사」(『문화유산』 6, 1957)
주석
주1

일정한 시대의 유물, 유적 또는 일정한 집단이 나타내는 전반적인 특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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