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사찰과 승려들을 관리하던 관리서(管理署)가 1904년 1월 폐지되자 봉원사(奉元寺)의 승려 이보담(李寶潭)과 화계사(華溪寺)의 승려 홍월초(洪月初) 등이 원흥사(元興寺)에 불교연구회를 설립하였다.
일본 정토종(淨土宗)의 영향을 받아 설립된 이 연구회는 정토(淨土)로 그 종지(宗旨)를 삼았으며 팔각형의 동메달에 ‘정토종교회장(淨土宗敎會章)’이라는 글을 새겨 회원에게 주었다. 초대회장은 홍월초, 2대회장은 이보담, 3대회장은 이회광(李晦光)였다.
1906년 4월 근대고등교육기관인 명진학교(明進學校) 설립을 결의, 그 설립취지를 전국 각 도의 수사찰(首寺刹)에 발송하였고, 초대교장에는 이보담이 취임하였다. 교사(校舍)는 동대문 밖 창신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하였던 원흥사를 사용하였으며, 약 50명의 승려학생으로 1906년 5월 8일에 개교한 이 학교는 이듬해에 55명이 입학하였다.
1908년에 1회 졸업생 11명, 1909년 2회 졸업생 7명을 각각 배출하였고, 이 학교의 교장은 2대 이능화(李能和), 3대 이보담, 4대 이회광이었다. 1908년 3월 전국 각 도의 대표 52명이 원흥사에 모여 불교연구회를 해체한 뒤 원종(圓宗) 종무원을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