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유암사(留巖寺)라 하였다.
광종(949~975 재위)이 중창하여 불은사라 하고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 삼았다. 『 고려사』에 예종과 고종, 충렬왕, 공민왕 등이 행차한 기록이 전한다. 목종 때 원공국사(圓空國師) 지종(智宗, 930~1018)이 ‘광천변소지각지만원묵선사(光天遍炤至覺智滿圓黙禪師)’라고 부르고, 가사(袈裟)를 하사받고 불은사 주지로 있었다.
삼장법사 자은군 의선(義旋)이 원의 연성사(延聖寺)와 광교사(光敎寺), 영원사(塋原寺) 주지와 더불어 불은사 주지로 재임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병이 들자 불은사 약사여래상에 기도하여 완쾌되었으며, 이에 보답하기 위하여 20여 년간 주1과 보살상을 조성하고 주2을 크게 지었으며, 1338년(충숙왕 복위 7) 가을에 회향 법회를 크게 열었다. 의선의 주3이자 대사도(大司徒)에 책봉된 희암도 불은사에 주지로 재임하였다.
1106년(예종 1) 9월과 1108년(예종 3) 11월에 예종이 행차하였고, 1110년(예종 5) 2월에 예종의 왕태후 명의태후(明懿太后)가 머물렀다. 의종 때는 문신 최윤의(崔允儀)의 유골을 불은사의 보리원(菩提院)에 모셨다. 1217년(고종 4) 7월에 고종이 행차하였다. 1298년(충렬왕 24)에는 충선왕이 이곳에 행차하여 영궁기지(營宮基地)를 보고 덕자궁(德慈宮)을 건립하였는데, 이후 충렬왕은 보위에서 물러나 이곳에 거주하였다. 『동국여지승람』 권상 개성부조에는 절터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기에 폐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