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연사는 통일신라 시대, 승려 의상이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말에 인도승 지공이 묵었으며, 조선 중기 고승의 보우가 15세에 출가하였다. 조선 후기에 승려 청고와 인성과 경화 등이 묵기도 하였다. 1831년(순조 31), 승려 월송 등이 50여 동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848년(헌종 14) 승려 대운이 마하선실을 지었다. 일제 강점기 1923년 승려 형진이 10년 정진하면서 1932년 59칸의 전각을 중창하였다. 한국전쟁으로 폐사되었으며 그 후 중수되어 고승 만공 등이 수행하였다.
주7 이후 고려 말까지의 모습은 알 수 없다. 고려 말에 인도 승려인 지공선시가 금가상산에 묵었다고 하며 조선 중기 고승인 보우가 15세에 출가한 곳도 마하연사였다. 조선 후기에는 용암혜언(龍岩慧彦, 17831841)에게 법을 전해 준 율봉청고(栗峰靑杲, 17381823)이 마하면에서 『금강경』을 연구하고 제자들에게 화엄일승(華嚴一乘)의 가르침을 폈다. 낙파인성(洛波印性, 17941877)은 27세부터 평생 주8, 화담경화(華潭敬和, 17861848)도 주9를 강설하였다. 1848년(헌종 14)에 승려 대운(大雲)이 주10 참선방 마하선실(摩訶禪室)을 짓고 머물렀다. 1831년(순조 31) 율봉의 제자인 승려 월송(月松)이 용담(龍潭)과 용암(龍岩, 1793~1841)과 함께 전각 50여 동을 주11 일제강점기인 1923년 승려 화응형진(華應亨眞)이 와서 10년 정진하다가 1932년 59칸의 전각을 3창하였다. 유점사의 주12로서 법당의 구조는 ㄱ자 모양이고 주13이 53개나 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터만 남아 있다. 만공월면(滿空月面)과 제자 지월병안(指月炳安), 자운성우(慈雲盛祐), 퇴옹성철(退翁性徹), 금봉혜원(金峰慧源) 등 근현대의 유명한 승려들이 수행하면서 주14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