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초명은 최천우(崔天祐). 중서령(中書令) 최충(崔冲)의 4대손으로, 수사공 좌복야 참지정사 주국(守司空左僕射參知政事柱國) 최용(崔湧)의 아들이다.
1128년(인종 6) 감문위녹사(監門衛錄事)로서 과거에 급제한 뒤,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태학박사를 거쳐, 우정언지제고(右正言知制誥)가 되었고, 1136년 좌사간으로 조제사(弔祭使)가 되어 금(金)나라에 다녀왔다.
1148년(의종 2)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우상시(右常侍) 최함(崔諴)과 함께 궁내시종(宮內侍從) 김거공(金巨公), 환자(宦者) 지숙(之淑) 등을 탄핵, 축출하였다.
그 뒤 시예부시랑(試禮部侍郎)·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를 거쳐 1151년 어사대부 동지추밀원사(御史大夫同知樞密院事), 이듬해 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 등을 역임, 1154년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로서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권판상서병부사(權判尙書兵部事), 동북면병마판사 겸 판중군병마사가 된 다음에 1162년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郎平章事判吏部事)가 되었다.
최윤의가 편찬한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은 고종 때(1234),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출판되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의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