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직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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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감찰어사, 좌간의대부, 검교태자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이칭
직서(稷諝)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066년(문종 20)
사망 연도
1135년(인종 13)
본관
동주(洞州: 지금의 황해도 서흥)
주요 관직
감찰어사|좌간의대부|검교태자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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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감찰어사, 좌간의대부, 검교태자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주(洞州). 초명은 직서(稷諝). 태조공신(太祖功臣)인 대광(大匡) 안락(安樂)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태자태부(太子太傅) 안충조(安忠祚)이고, 어머니는 국자좨주 좌간의(國子祭酒左諫議) 김상빈(金尙賓)의 딸이며, 처는 수사공 좌복야 판공부사(守司空左僕射判工部事) 유자유(柳子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학문을 좋아하여 남궁(南宮)에 선발되었고, 1098년(숙종 3) 윤관(尹瓘)이 사신으로 송나라에 갈 때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왕이 내시(內侍)로 불러들이고는 안직숭의 재주와 기량을 높이 사 ‘직숭(稷崇)’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1104년 과거에 급제하여 장사랑 양온승동정(將仕郎良醞丞同正)이 되었고, 1109년(예종 4) 식목녹사(式目錄事)에 발탁되었다. 1113년 서두공봉관(西頭供奉官)으로 송나라에 사행하여 이듬해 휘종(徽宗: 중국 송나라 8대 황제)이 내려준 대성신악(大晟新樂)을 받아왔다.

1115년 권지지후(權知祗候)를 거쳐 이듬해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로서 통판서경유수(通判西京留守)가 되었고, 이어 감찰어사(監察御使)·이부낭중(吏部郎中)·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하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왕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곁에서 잘 보좌하여 국자좨주 좌간의대부(國子祭酒左諫議大夫)가 되었다.

1130년 간의(諫議)로서 상소하여 시정(時政)을 논하였다. 이듬해에는 직문하성(直門下省)으로 우간의(右諫議) 이신(李伸) 등과 함께 동경지례사서장관(東京持禮使書狀官) 최봉심(崔逢深)이 무과 출신이어서 서장관의 적임이 될 수 없다고 논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최봉심은 묘청(妙淸)을 성인으로 떠받들고 있었다. 이어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공부상서(工部尙書)·삼사사(三司使)를 역임하였고, 1134년 검교태자태부(檢校太子太傅)로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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