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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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수태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충겸(忠謙)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034년(덕종 3)
사망 연도
1104년(숙종 9)
주요 관직
문하시중|수태사
관련 사건
이자의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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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수태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문종(文宗) 때 호부시랑(戶部侍郞)을 거쳐 선종(宣宗) 때 형부상서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좌복야(刑部尙書西北面兵馬使吏部尙書左僕射)가 되었고, 1092년(선종 9)에는 참지정사 권판서북면병마사 겸중군병마사(參知政事權判西北面兵馬事兼中軍兵馬事)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중서시랑평장사 겸판형병부사(中書侍郎平章事兼判刑兵部事)가 된 뒤 1094년에 헌종(獻宗)이 즉위하자 문하시랑평장사 상주국(門下侍郎平章事上柱國)이 되었다.

이 때 이자의(李資義)가 난을 꾸미자 왕국모(王國髦)에게 궁궐을 지키게 하고, 장사(壯士) 고의화(高義和)를 시켜 이자의와 그 일당을 주살하게 하였다. 그 공으로 권판이부사(權判吏部事)가 되었고, 이어 특진 수사도 판이부사(特進守司徒判吏部事)에 이르렀다. 1095년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수태위 문하시중(守太尉門下侍中)으로 발탁되어 금은기(金銀器)와 의대(衣帶) 등을 받았다.

한편, 국학(國學)에서 선비를 기르는 것은 민폐가 심하고 중국 것의 모방이라 하여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103년(숙종 8) 나이가 70이므로 퇴관(退官)할 것을 청하였으나 재능이 뛰어나고 군사에 밝으며 아직 정신기력이 강건하다 하여 궤장(几杖)이 하사되고 수태부 판호부 서경유수사(守太傅判戶部西京留守事)가 되었다. 이어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致仕)하였으나, 이듬해 수태사(守太師)에 오르고 협모공신(協謀功臣)의 호를 받았다. 숙종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으며, 시호는 충겸(忠謙)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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