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사람으로, 귀화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예부원외랑까지 승진하였다. 인종이 서적소(書籍所)를 수창궁(壽昌宮) 옆에 두자, 여러 신하들과 번갈아 숙직하며 왕의 고문(顧問)에 대비하였다.
국자사업 지제고(國子司業知制誥)에 전직되었을 때, 왕이 재변(災變) 때문에 구언(求言)의 조서를 내리자 이에 응대한 장문의 상소가 유명하다.
즉, 천변의 이상은 하늘이 임금을 사랑하여 그 어지러운 것을 중지시키려고 함에 있으므로 오히려 만세의 복이니 이에는 진실, 즉 덕으로 응해야 하며 허문(虛文), 즉 지금의 도량(道場)에서 재(齋)하고 기도[醮: 초]하는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임금은 힘껏 진실로써 천변·흉년 등 재이(災異)에 응하고 현실의 폐단을 개혁하며, 그 개혁은 태조의 교훈을 따르고 문종의 옛 법전을 찾는 데 있을 따름이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당시 묘청 등의 대화궁(大華宮)이 재이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하고 군주의 수덕(修德)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