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키자, 평서원수(平西元帥) 김부식(金富軾)은 많은 성들을 회유하고 막료들을 7, 8차례나 서경에 보내 항복하기를 권유하였다.
반란군 실권자의 하나인 분사시랑(分司侍郎) 조광(趙匡) 등은 형세가 불리하여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주저하고 있었다. 그때 김순부가 평주판관(平州判官)으로 조서를 가지고 성안으로 들어가 반란군을 설유하였다.
그 결과 반란군은 묘청·유참(柳旵)·유호(柳浩)의 목을 베고, 분사대부경(分司大府卿) 윤첨(尹瞻) 등을 개경으로 파견하였는데, 김순부는 그들을 개경까지 호송하는 등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웠다. 1162년(의종 16) 김영윤과 함께 금 세종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사신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