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백주(白州)이다.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지낸 유한영(劉漢英)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사재주부(司宰主簿)를 지냈다.
성품은 온량공검(溫良恭儉)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7, 8세부터 글을 알았으며 자라서는 육경(六經) 및 제자백가에 통달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초임으로 양온승(良醞丞)으로서 함종현위(咸從縣尉)에 임명되었다. 유능하여 정치적 업적이 많았다는 평을 들었다.
임기를 마친 후 시대창령(試大倉令) 장주사(掌奏事)를 거쳐 전중내급사 예부원외랑 기거랑(禮部員外郎起居郎) 등을 역임하였고, 1045년(인종 23) 안서대도호부부사(安西大都護府副使)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146년 의종이 즉위하자 내시직에 들어가 장주사(掌奏事)를 맡았다.
1153년(의종 7) 3월 지주사로서 국자시를 주관하여 시부(詩賦)로 김세뢰(金世賴)를 뽑고, 십운시(十韻詩)로 이동수(李東粹) 등을 뽑았다. 예부낭중(禮部郎中)·추밀원우부승선 지병부사(樞密院右副承宣知兵部事)·추밀원지주사 사재경(樞密院知奏事司宰卿)·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 등을 역임하고, 1155년(의종 9) 정월 산기상시 보문각학사(散騎常侍寶文閣學士)로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