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문익(文翼)의 아들이며, 이자연(李子淵)의 아들이자 이자겸(李資謙)의 숙부인 이의(李顗)의 사위이다. 문공인(文公仁)의 아우이고, 조계종대선사(曹溪宗大禪師) 가관(可觀) 문공유(文公裕)의 형이며, 최사추(崔思諏)·한안인(韓安仁)과는 사돈간이다.
아버지의 음서(蔭敍)로 기용되었다가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인종 때 우정언지제고(右正言知制誥)에 발탁되고, 1130년(인종 8) 전중시어사로서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이주연(李周衍), 중승 임원준(任元濬), 잡단(雜端) 황보양(皇甫讓), 시어사 고당유(高唐愈)와 함께 시폐(時弊)를 상소하였으나 2, 3사(事)만 받아들여졌다.
1135년 낭중으로 금나라에 가서 만수절(萬壽節)을 하례하였다. 1148년(의종 2)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를 거쳐, 어사대부 지추밀원사 판삼사사(御史大夫知樞密院事判三司事)가 되었다. 1150년 지공거를 역임하였으며 이어 참지정사에 올랐다.
1151년 판형부사(判刑部事)가 되었다. 이 해 대령후(大寧侯) 왕경(王暻: 의종의 동생)과 교결(交結)했다고 하여 내시낭중(內侍郎中) 정서(鄭敍)를 탄핵하였다. 또한 대간을 무고한 천례 출신인 환관 정함(鄭諴)을 탄핵하였다. 이어 중서시랑평장사 판이부사(中書侍郎平章事判吏部事)를 거쳐 수사공(守司空)이 되었다.
1152년 서경유수사 문하시랑동평장사(西京留守使門下侍郎同平章事)에 올랐으나, 우간의 신숙(申淑)의 정함 탄핵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의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