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대천(代天). 고려 개국공신인 박수경(朴守卿)의 현손(玄孫)이다.
문종(文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文翰)의 여러 벼슬을 거쳤다.
일찍이 거란이 압록강 동쪽지역에 야심을 가지고 강을 건너와서 동안(東岸)에다 보주(保州: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를 설치하여 고려에서 여러 차례 반환을 요청해도 듣지 않다가, 1075년(문종 29) 박인량이 지은 진정표(陳情表)가 요주(遼主)를 감동시켜 철거하게 되었다.
우부승선(右副承宣)을 거쳐 1080년에는 예부시랑으로서 호부상서 유홍(柳洪)과 함께 송나라에서 약재를 보내준 데 대한 사은사로 갔는데, 저장(浙江)에 이르러 태풍을 만나 대부분의 방물(方物)을 잃은 죄로 귀국한 뒤 죄를 받을 뻔하기도 하였다.
박인량이 저술한 천독(天牘)·표(表)·장(狀)·시 등은 동행하였던 김근(金覲)의 시문과 함께 『소화집(小華集)』이라는 이름으로 송에서 간행되어 중국에까지 그 문명을 날리었다. 1089년(선종 6)에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오르고, 이어 우복야(右僕射)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저술로는 『고금록(古今錄)』 10권과 『수이전(殊異傳)』이 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세 아들 박경인(朴景仁)·박경백(朴景伯)·박경산(朴景山)이 모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름으로써 고려 전기 명문가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