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함문화론은 1925년 최남선이 전개한 한국고대문화 관련 사론(史論)이다. 1920년대 일제의 어용 사학자들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는 식민사관이 강요되고 있었다. 이에 맞서 민족주의 사학론이 대두되었다. 특히 최남선은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려 노력하였고, ㅂㆍㄺ[P?rk] 사상에 주목하였다. ㅂㆍㄺ[P?rk]의 가장 오랜 자형(字形)인 ‘불함’이란 말을 빌려 불함문화로 규정하였다. 인류 문화에 기여한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을 천명한 이론으로 민족주의 우파에서 제시한 가장 전형적인 역사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제의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대항해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20년대 한국사 연구에서는 일제의 어용 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식민사관이 강요되고 있었다. 식민사관이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제국주의적 이론의 하나이다. 당시 제시된 식민사관의 대표적 사례로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만선사관(滿鮮史觀)’, ‘정체성론(停滯性論)’, ‘문화적 독창성 결여론(缺如論)’ 등을 들 수 있다.
‘일선동조론’은 식민지의 동화(同和)를 관철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다. 태고시대 한국과 일본이 같은 혈연 집단에 속했음을 논하되, 일본은 부강한 본가(本家)이며 한국은 빈약한 분가(分家)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일합방’은 본가가 분가를 지원하는 행위라고 어거지를 쓰는 것이다.
‘만선사관’은 한민족의 역사적 · 문화적 독립성을 부인하고 한반도와 만주를 하나의 역사 · 문화 단위로 보는 이론이다. 한반도 지역에서 형성된 정치 권력과 문화는 만주 지방에서 패주한 세력이 형성한 것으로, 한반도는 만주에 종속적 존재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정체성론’에서는 19세기 후반의 한국 사회가 일본의 12세기에 해당하는 사회 상황에 정체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스스로의 발전 능력이 상실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논리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식민사관에 맞서 한국인 연구자들은 반식민사학론을 제시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서 먼저 민족주의 사학론을 들 수 있다. 1920년대의 민족주의 사학에서는 애국계몽운동기의 역사 인식에서 제시되던 충군애국주의사학(忠君愛國主義史學)을 극복하고, 민족문화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이론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때 신채호(申采浩)는 ‘일선동조론’을 깨뜨릴 목적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연구했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남선(崔南善)도 단군조선을 비롯한 한국 고대사 연구에 투신하였다.
특히, 최남선은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려 노력했는데, 그의 이러한 입장이 1925년에 저술한 이 ‘불함문화론’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었다. 불함문화론은 1918년에 발표된 「계고차존(稽古箚存)」의 집필 과정에서 잉태된 것으로 생각되며, 그 뒤 「단군론(檀君論)」(1926), 「아시조선(兒時朝鮮)」(1926), 「단군급기연구(壇君及其硏究)」(1928) 등을 통해 일관되게 전개되었다.
최남선은 먼저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를 바로잡기 위해 동방문화의 연원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동방문화의 원류로 ᄇᆞᆰ〔Pǎrk〕사상을 주목했고, 이 사상의 발원지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태백산(太白山)이며, 단군은 그 중심 인물임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Pǎrk의 가장 오랜 자형(字形)인 ‘불함’이란 말을 빌려 ‘ᄇᆞᆰ’을 숭상하던 문화권을 불함문화로 규정, 그 문화권의 중심이 조선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그가 제시한 불함문화는 조선을 중심으로 그 인근 지역에 존재하던 ‘ᄇᆞᆰ 사상’을 가진 고대사회의 대문화(大文化)를 뜻한다.
그는 조선이 불함문화권의 중심임을 논증하기 위해 조선의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태백산과 소백산(小白山) 등 ‘백(白)’자 계열의 땅이름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백(白)’은 Pǎrk의 대자(對字)로서 태양 · 신 · 하늘을 뜻하는 옛말이며, 태양신을 숭배하던 고대문화를 반영하는 어휘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동이족(東夷族)의 거주지에 다수 분포되어 있는 ‘백산(白山)’은 태양신께 제를 지내던 곳이었으며, 여러 지역에 있는 이 소신산(小神山) 중 태백산, 즉 백두산이 가장 중심적인 곳임을 논하였다.
또한, 하늘[天]을 의미하는 고어인 Taigar에 주목, 여기에서 단군이란 이름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즉, 단군은 ‘천(天)을 대표하는 군사(君師)의 호칭으로, 몽골어에서 배천자(拜天者)를 뜻하는 Tengri의 음사(音寫)로 해석하였다. 또 ‘백산(白山)’은 단군이 유래한 곳이므로 Pǎrk과 Taigar은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최남선은 Pǎrk사상의 분포지를 추적하기 위해 한반도 인근 지역의 지명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본의 고대문화도 이 사상을 나타내며, 중국의 동부 및 북부 일대도 불함문화 계통에 포함되고, 몽골과 중앙아시아 일대까지도 불함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설정하였다. 바로 이 지역에 같은 문화권이 만들어졌으나 ‘이 문화에는 명상적 산물과 기록과 조형 미술이 존중되지 아니하여…… 타문화의 그늘에 숨게 되었으나…… 이는 동방문화의 일대 부면(一大部面)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서’ 불함문화는 동양사 내지 인류의 문화사 이해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불함문화의 잔존 요소가 오늘날 이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샤머니즘을 통해 검출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불함문화론을 제시하며 일본 문화에 포함되어 있는 한국 문화의 요소를 지적했고, 중국 문화의 형성에 미친 동이문화(東夷文化)의 요소, 즉 ‘동이소(東夷素)’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불함문화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에서 단군신화에 주목하고 이를 분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은 실로 인류 문화사의 틀을 바꾸어 보려는 엄청난 시도였다. 그는 이 이론으로 ‘일선동조론’과 ‘만선사관’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한반도는 동방문화의 진정한 중심지로 떠오르고, 당시 만주를 비롯한 중국 일부와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은 종속적 위치로 떨어진다.
불함문화론은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과 인류 문화에 대한 커다란 기여를 천명한 이론이었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식민사관의 ‘문화적 독창성 결여론’을 부인하는 것이었으며, ‘정체성이론’에 대한 간접적인 부정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견해 때문에 우리는 불함문화론을 1920년대 민족주의 우파에서 제시한 가장 전형적인 역사 이론으로 평가한다.
한편,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은 조선 왕조가 전통적으로 견지해 오던 중국 중심의 역사 이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 고대 문화의 주요 요소로 불함문화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한국 문화의 독자성과 위대성을 밝히려 했기 때문이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은 한국사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을 높여 주었고, 한국 고대사, 특히 고대 사상사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이론에 담긴 문명론적 특성은 국문학 분야를 비롯한 한국 문화 전반에 걸친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사고의 틀을 제시해 주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가 제시한 이론의 연구 방법론에는 약간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언어학적 연구 방법론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불함문화론이 제시한 긍정적 영향을 1920년대 이후의 한국 문화 도처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