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장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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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공예
개념
석가모니의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뼈를 무덤에 안치하여 예배 공경하기 위한 장치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사리장치는 석가모니의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뼈를 무덤에 안치하여 예배 공경하기 위한 장치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사리는 대체로 탑의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 안 또는 지하의 중심선상에 안치한다. 용기의 재질은 대개 흙·돌·금속·수정 등이다. 흙은 주로 외함으로 사용되고 수정은 사리를 직접 담는 데에 쓰인다. 사리병은 신라 때 유리 사리병 등이 쓰이다가 고려 때는 금속제 병이 많이 쓰였다. 사리장치의 명문은 제작경위·제작자·발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사리장치를 통하여 그 시대의 미술, 특히 공예의 정수를 살필 수 있다.

목차
정의
석가모니의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뼈를 무덤에 안치하여 예배 공경하기 위한 장치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내용

범어로 sarira이며, 진신사리(眞身舍利)와 법신사리(法身舍利)로 구분된다.

진신사리는 부처님의 결정체인 유골(遺骨)이고, 법신사리는 불타의 정신이 깃든 불경(佛經)을 비롯한 옷[衣] · 바리[鉢] · 지팡이[杖] · 좌구(坐具), 그리고 금 · 은 · 유리 · 수정 · 마노 등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모래 · 풀 · 대나무 · 나뭇가지까지도 될 수 있다.

이러한 불사리(佛舍利)와 더불어 우리 나라에서와 같이 고승(高僧)들의 신골은 승사리(僧舍利)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사리를 봉안하는 곳이 바로 탑으로서, 석가가 열반하자 다비(茶毘)에 의해서 나온 사리를 인도의 여덟 나라에 나누어 각기 봉안하기 위하여 탑을 세운 것이 바로 최초의 8탑이다.

이것을 일컬어 사리팔분(舍利八分) 또는 분사리라고 하는데, 사리신앙의 시초이며 불탑의 기원이기도 하다. 서기전 3세기 중엽에는 아육왕(阿育王, Asoka)이 8탑 중 7탑에서 불사리를 발굴하여 8만 4000탑을 세웠다고 하며, 이는 불교 전파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불탑 안에 신성한 사리를 안치함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므로 사리장치는 각 시대의 공예를 대표할 수 있으며, 때로는 명문이 있어 학술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불사리의 근원인 인도에서는 사리를 대체로 탑의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 안 또는 지하의 중심선상에 안치하며, 용기의 재질로는 대개 흙[土] · 돌[石] · 금속(金屬) · 수정(水晶) 등이 사용되는데, 흙은 주로 바깥그릇[外器]에 사용되고, 수정은 사리를 직접 담는 데에 쓰이는 것이 통례이다.

이렇게 재질이 귀한 것부터 차례로 포장하는 원칙은 불교가 전래된 각 나라에 전승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직접 · 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중국 사리장치의 예로는 수나라의 인수백탑(仁壽百塔) 사리장치를 들 수 있다.

이 목탑의 사리장치는 지하 3m 아래에서 발견되었는데, 녹색유리병 등에 사리를 넣은 뒤 내함을 금 · 은 · 동함으로, 그리고 외함은 석함으로 하였다. 이 외함 위에는 발원문과 발원자의 이름이 새겨진 석판이 분묘의 묘지처럼 얹혀져 있었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사리봉안을 매장(埋葬)으로 수용한 까닭에 사리용기가 관 형태로 출현한 것이다.

또 사리용기로 금 · 은 · 동 · 석을 사용하는 것은 인도의 옛 제도를 따른 것으로, 『대반열반경(大般涅般經)』 권 하(卷下)의 석가의 보관(寶棺)이 금 · 은 · 동 · 철의 4중관이었다는 것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나라의 사리 전래를 우선 문헌상으로 보면, 『삼국사기』 권 4 진흥왕 10년조와 『삼국유사』 권3 탑상 4 전후소장사리조(前後所藏舍利條)에 “양(梁)에서 불사리를 얼마 보내오자 왕이 흥륜사 앞에서 신하들로 하여금 맞게 하였다.”는 짤막한 기록이 보이고 있다.

사리장치가 발견된 대표적인 예로는 목탑의 경우 부여 군수리 백제목탑지의 지하 1.6m에 있는 방형석 위에서 발견된 석불과 금동보살, 경주 황룡사 목탑지의 거대한 방형석에서 출토된 금동탑지(金銅塔誌, 872년),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법주사 팔상전에서 발견된 명문(銘文)이 있는 동판과 은제 사리호 등을 들 수 있다.

석탑에서 발견된 예로는 고신라의 분황사탑 석함과 금동장식구, 통일기의 감은사지 서탑 출토 방형 금동사리함과 수정사리병, 황복사탑의 금동사리함과 불상, 불국사 석가탑의 방형 금동함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陀羅尼經), 그리고 법광사탑의 탑지석과 납석제 원호, 동화사 비로암 석탑의 석제 사리호, 봉화 서동리 동탑의 활석제 원호, 보림사 동 · 서탑의 탑지석(塔誌石)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 사리장치의 특징을 몇가지 들면 사리장치처로는 석탑의 경우 제1층 탑신이 가장 많으나 2, 3층 또는 기단부 밑에 봉안하는 예도 있다.

목탑의 경우는 심초석과 지하 방형석이 되겠고, 전탑은 1, 2, 3층과 옥개부에 장치한다. 그리고 탑지는 전 · 석 · 금동 등의 재료가 주로 쓰였는데, 금동은 신라, 전은 통일신라말, 석제는 거의 정사각형으로 고려시대에 많이 쓰였다.

사리를 담는 병은 신라의 경우 당대(唐代)의 영향으로 보이는 불국사 석가탑의 유리사리병을 비롯하여 수정 · 목병 등이 쓰이다가, 고려에서는 금속제 병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중 신라에서는 자방형(子房形)의 유리병이 사리병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 매우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사리장치의 명문은 제작경위 · 제작자 · 발원 등을 기록하는데, 사리함 · 호 · 합 등의 용기나 또는 탑지에 쓰거나 새기는 것이 통례이다. 이러한 사리장치를 통하여 깊은 신앙심과 조형미, 그리고 여러 가지 공양물 등에서 우리 나라 · 인도 · 서역 · 중국 · 일본 등 그 나라와 그 시대의 미술, 특히 공예의 정수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불사리장엄』(국립중앙박물관, 1991)
『佛舍利の莊嚴』(奈良國立博物館 編, 同朋社, 1983)
「한국탑파의 사리장치소고」(김희경, 『고고미술』 106·107, 1970.9.)
「한국탑파의 사리병양식고」(김희경, 『고고미술』 138·139, 1978.9.)
「신라사리장치연구」(강순형, 홍익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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