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식 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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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공(전식)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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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전식(全湜, 1563∼1642)을 그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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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전식(全湜, 1563∼1642)을 그린 초상화.
개설

199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가로 136㎝, 세로 92㎝. 충청북도 옥천면 동이면 금암리목담영당(鶩潭影堂)에 봉안되어 있다.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정원(淨遠), 호는 사서(沙西). 전팽조(全彭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전혼(全焜)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전여림(全汝霖)이며, 어머니는 월성이씨(月城李氏)로 참봉 이신(李信)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문중의 기록에 의하면 지금 목담영당에 있는 이 초상화는 1819년에 상주(尙州)에서 옮겨 배향한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대략 이 무렵에 이모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비단은 올이 촘촘하고 두터우며 폭이 좁은 조선 비단을 세 번 결봉하여 사용했고, 표구는 조선시대의 족자 형태이나 매우 심하게 헤진 상태이다.

내용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단령(團領: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착용하고 오른쪽을 향하여 의자[交椅子]에 앉아서 발을 의답(椅踏) 위에 올려놓고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이다. 바닥에 채전(彩氈: 일종의 카펫)이 깔려 있다.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도상을 따르고 있다.

사모 날개의 큼직한 운문(雲文: 구름무늬)을 수묵으로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단령의 옷주름을 단순화된 직선으로 짙게 묘사하고 큼직한 운문을 배치한 뒤 어두운 자주색으로 채색하였다. 그리고 단령의 치마 옆 자락을 과장되게 터서 바지의 무릎을 일부 노출시키고 단령 안감의 운문을 청색 진채(眞彩: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로 묘사하였다. 적색 바탕에 금분으로 뇌문(雷文: 번개무늬)을 복잡하게 선묘(線描: 선으로만 그림)한 뒤 구름과 모란을 배경으로 하여 백한(白鷳) 두 마리를 그린 백한 흉배(白鷳胸背)가 있다. 이들은 모두 17세기 전반경의 초상화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세부적 특징들이다.

그러나 의답의 형태와 채전의 문양은 단순하며 소박하여 17세기 초반 공신도상들의 일반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다. 화법에 있어서도 17세기 초 공신도상들의 일반적인 특징들과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낮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현재 초상화가 매우 심하게 박락되고 퇴락하여 화법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곤란하지만, 얼굴 표현법이 매우 특이한 편이다. 먼저 호분(湖粉: 흰 가루)에 살색을 미세하게 혼합한 기본색을 얇으나마 불투명하게 발랐다. 그 위에 농담과 굵기의 변화가 전혀 없는 주선(朱線)으로 매우 가늘게 얼굴의 세부 윤곽선과 주름선을 그렸다. 그 다음 농묵(濃墨 : 짙은 먹물)의 짙은 먹선과 흰색 필선으로 수염을 묘사하였다.

지금은 얼굴의 기본 살색도 거의 퇴락하여 흰색 색조만이 남은 상태이다. 얼굴의 요철감을 표현하기 위한 선염(渲染: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하는 일)을 가했는가의 여부도 현재 상태로는 파악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상태만으로도 17세기 초반의 초상화들이 붉은색 담채 중심으로 얼굴을 표현했던 것과 다르며, 18세기 이후의 초상화들이 배채법과 선염법 및 필묘법을 적절히 혼용했던 것과도 다른 독특한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단령의 어두운 자주색도 다소 불투명한 편이다. 이는 17세기 초 물기를 많이 사용한 담채법과 다른 기법이다. 바닥의 채전은 흑색, 적색, 녹색, 흰색만을 사용하되 물기를 많이 주어 대단히 거칠게 점묘했다. 이는 17세기 초반 초상화들의 채전이 통상 황색과 청색까지 넣어 대단히 화려하며 물기를 적게 주어 매우 두터운 후채법으로 정세하게 점묘했던 것과 크게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흉배에 금분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통상의 예와 다른 점이다. 전반적으로 채색 안료 자체도 색조가 어둡고 탁하여 질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으로 볼 때, 전식의 초상화는 17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조선 후기의 다소 수준이 낮은 지방 화가 혹은 화승(畵僧)에 의한 이모본일 가능성이 많다고 추정된다. 초상화가 워낙 심하게 박락되고 퇴락하여 정확한 이모 시기를 추측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문화재청 편, 눌와, 2007)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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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강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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