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는 이 절에 머물렀던 지명법사(知命法師)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백제의 제30대 임금인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은 서동(薯童)이었는데,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善花)와 혼인하여 백제에 돌아와 살면서 금(金)을 언덕처럼 쌓아놓고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신라로 수송할 계책을 물었다.
법사는 신통력으로 보낼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가져다놓으니, 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보내어주었다.
진평왕은 신비로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늘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으며, 서동은 이로 말미암아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하루는 무왕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 아래의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에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올렸다.
왕비가 왕에게 그 못에다 큰 절을 세울 것을 청하자 왕은 지명법사에게 못을 메울 방법을 물었다. 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