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가 세워지고 새로운 지배체제가 갖추어지는 태종대에 이르러, 양반의 정처로서 세 번 혼인하는 여성은 자녀안(恣女案)에 그 명단을 올려 부도(婦道)를 바로잡자는 데서 시작되었다.
삼가녀(三嫁女)는 흔히 실행부녀(失行婦女) 또는 자녀(恣女)로 통칭되었다. 자녀안의 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것으로, 양반의 여자로서 부정(不貞)한 행위를 했거나, 세 번 이상 혼인한 여성의 소행을 기록한 대장이었다. 일단, 이 자녀안에 기록되면 그 자손의 관직 등용이 크게 제약을 받았다.
태종대의 자녀안도 고려시대의 제도에 의거하였다. 태종대의 건의에 나타나는 자녀의 적용 범위는 아주 제한되어 있었다. 첫째, 신분적으로 양반의 정처로 규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처가 아닌 첩이라면 무관한 셈이 된다. 둘째, 양반의 정처라 할지라도 두 번까지의 혼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당시 조선 왕조의 양반사회 내부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여성은 극소수였을 것이다. 삼가녀의 경우에 사환(仕宦)의 제한 내용은 조선왕조의 기본법전인『경국대전』에 의하면, 실행부녀 및 재가(再嫁)한 부녀의 소생은 2대에 걸쳐 동·서반직(東西班職)의 서용이 불허되었다.
또한,『경국대전』 예전(禮典) 제과조(諸科條)에는 문과·생원진사시에 응시할 수 없는 무자격자를 열거하고 있다. 여기에는 죄를 지어 영구히 임용될 수 없는 자(罪犯永不敍用者), 장리(贓吏)의 아들, 재가하거나 실행부녀의 자손, 그리고 서얼의 자손이 이에 해당되었다.
이와 같이, 실절자(失節者)의 자손은 아예 과거에도 응시할 수 없게 하는가 하면, 과거 응시의 범위를 자손대까지 적용하는 것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