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중(朴建中, 1766~1841)의 자는 사표(士標), 호는 선곡(仙谷), 본관은 상주이다. 공주에서 태어났으며, 충북 괴산으로 이주하여 선유동에 머물렀다. 집안이 큰 재력을 가지고 있어 평생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송환기(宋煥箕) · 김정묵(金正默) 등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정통을 이어오던 학자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성리학과 예학에 깊은 조예를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12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는 그림이 있고, 책의 크기는 32.5×22.3cm이다.
이 책은 1801년에 착수하여 6년에 걸친 작업 끝에 1806년(순조 6)에 초고가 완성되었다. 목록 상하 두 책은 초고가 완성된 뒤에 작성하였다. 그리고 30년 후인 1836년(헌종 2)부터 3년 동안에 걸쳐 교정이 이루어졌다. 그전에 『비요촬약조해(備要撮略條解)』와 『초종례요람(初終禮要覽)』이 1825년과 1832년에 각각 편찬되었다. 『비요촬약조해』는 『상례비요보』가 너무 방대하여 실행에 필요한 요점을 쉽게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시의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요지만을 간추려 편찬한 책이다. 『초종례요람』은 상례에서 가장 황급한 시기인 초종례의 의절만을 다루었으며, 한문 문장 뒤에 한글 번역문을 붙여 부녀자와 아동들까지 누구나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박건중은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이 증보, 교정한 신의경(申義慶)의 『상례비요(喪禮備要)』를 보완하였다. 체재는 『상례비요』의 본문과 본그림을 원본 그대로 베낀 본(本)과 제시된 예문(禮文)의 원류와 의미를 밝히고 상례와 변례를 상세하게 정리한 보(補)로 구성하였다. 저술 목적은 상례와 제례의 이해와 실행에 필요한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자학 계통의 예서 혹은 경전주석서들을 폭넓게 참고하였으며, 겸재 박성원이 편찬한 『예의유집(禮疑類輯)』을 많이 인용하였다. 대체로 기호의 사계와 우암 계통의 예학을 축으로 삼고 있지만, 노론이나 소론 계통의 학자들의 설도 고루 참조하고 영남의 퇴계 연원의 예학적 성과도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의 체재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책은 서(序, 1806년, 박건중 찬) · 범례(14칙) · 인용서목(부 『예의류집』 인용서목) · 목록 상, 제2책은 목록 하 · 상례비요서(김장생 1620년, 김집 1648년) · 상례비요범례(4칙) · 상례비요도(사당전도 등 각양 도설), 제3책은 권1이 초종지구(初終之具)부터 습(襲), 권2가 영좌지구(靈座之具)부터 대렴(大斂), 제4책은 권3이 성복지구(成服之具)부터 자최삼년(齊衰三年), 권4가 자최장기(齊衰杖期)부터 세마(細麻), 제5책은 권5가 상복(殤服)부터 조곡(朝哭), 권6이 조자치전부장(吊者致奠賻狀)부터 문상(聞喪), 제6책은 권7이 개영역사토지지구(開塋域祠土地之具)부터 계빈(啓殯), 권8이 사토지지구(祠土地之具)부터 부모망답인위소의절(父母亡答人慰疏儀節), 제7책은 권9가 부제지구(祔祭之具)부터 담(禫), 권10이 길제지구(吉祭之具)부터 고우사당(告于祠堂), 제8책은 권11이 사당(祠堂)부터 유사칙고(有事則告), 권12가 시제지구(時祭之具)부터 상례비요발(喪禮備要跋, 1621년 신흠 찬)까지이다.
본문에서는 예문에 등장하는 각종 용어 및 도구와 복장 등의 개념을 조리 있게 해설하였다. 오복친(五服親)의 개념은 『자휘』와 『이아』 등에 입각하여 글자의 음과 의(義)에 대한 훈고를 치밀하게 행한 점이 특징이다. 『상례비요』에 없는 것을 추가한 항목이 많으며, 상례(常禮)뿐 아니라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경우의 변례를 거론하여 그것에 관한 기왕의 논의를 세밀하게 인용하는 한편, 자신의 논증을 부가하기도 하였다.
18세기까지의 성리학자들의 예학전통을 계승하고 종합하여 그 예학을 집대성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대단히 크다. 『상례비요보』는 『주자가례』의 관점과 체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상례비요』와 『가례집람』 · 『예의류집』의 예학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각종 예설의 전거와 이론적 토대를 보완했으며, 예설의 원류에 대한 해설과 각종 예의와 문답을 총괄하는 한편, 충실한 훈고와 고증의 작업에 바탕하여 해설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