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태고 보우(太古普愚)의 행장에 의하면 1330년 태고 보우가 이 절에 머물며 관음보살에게 예배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이색이 지은 「지평현미지산죽장암중영기(砥平縣彌智山竹杖菴重營記)」에 상원사가 언급되고 있어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 상원사는 용문사, 죽장암, 윤필암 등과 함께 미지산 즉 용문산의 대표적인 사찰이 되었다.
조선 건국 후에는 1450년(세종 32) 세종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효강을 보내 수륙재를 개최하였다. 조선시대 상원사는 세조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찰이 되었는데, 세조는 1458년(세조 4)에는 해인사 대장경 인출본 중 한 질을 상원사에 두었다. 1463년(세조 9) 10월에는 인근에서 강무 중이던 세조가 이곳에 들러 관음보살(觀音菩薩)이 나타나 친견한 이적을 경험하고 어명을 내려 절을 크게 중수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최항(崔恒)에게 기록하게 하여 목판에 새긴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이 절은 끊임없이 중수되어 면면히 이어 오다가 1907년의 의병 봉기 때 왜병이 방화하여 겨우 법당(法堂)만 남게 되었다.
1918년 주지 최화송(崔華松)이 화주(化主) 차상원(車祥元)의 도움으로 대방(大房)을 재건하였고, 1934년 주지 최경언(崔璟彦)이 객실(客室)을 신축하였으나 6·25전쟁 때 용문산전투를 겪으면서 다시 소멸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龍華殿) · 삼성각(三聖閣) · 청학당(淸鶴堂)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비구니 경한(鏡漢)에 의해서 건립된 것이다.
현존하는 중요 문화재는 없으나 원래 이 절에는 범종(梵鐘)과 석사자(石獅子) 1구, 팔각석탑등(八角石塔燈)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 석사자와 팔각석등은 제작 연대가 고려시대 중기로 추정되는 우수한 작품이었다 한다. 이 절의 위쪽에는 윤필암(潤筆庵)의 유지가 있고, 그 아래 미륵불을 모신 불당(佛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