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大師)는 원래 부처님에 대한 존칭인 대도사(大導師)의 줄임말로 승려를 높이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법계(法階)의 하나로도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조정에서 고승들에게 호를 내릴 때 대사라는 칭호를 덧붙였는데, 780년 당나라 의종(懿宗)이 운호에게 삼혜대사(三慧大師), 승철에게 정광대사(淨光大師)의 호를 내린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고승에게 대사의 호를 내리는 관습이 신라에도 전승되어 나말여초(羅末麗初)에는 대사의 칭호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말여초에 활동한 주요 선승들 중에는 왕명으로 시호와 함께 대사호가 내려지고 탑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고려 초 광종은 태조가 스승으로 우대하였던 승려들을 대사로 높였다.
고려시대 광종 대 승과(僧科)가 실시되고 승정이 정비되면서 대사는 승려의 법계 중 하나가 되었다. 국가에서 종파별로 실시한 승과의 대선(大選)에 합격하면 대덕(大德)을 거쳐 대사가 되고, 그 뒤 중대사(重大師) ·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이후 선종은 선사(禪師)와 대선사로 승차(僧次)되었고, 교종은 수좌(首座)에서 승통(僧統)으로 승차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승려가 교종선(敎宗選)에 합격하면 중덕(中德)과 대덕을 거쳐 대사에 이르게 되었으며, 대사를 거쳐 도대사(都大師)가 되면 교종을 관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1566년(명종 21) 양종(兩宗)과 승과가 폐지됨에 따라 이 법계는 없어졌으며, 대사라는 명칭은 일반화되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승려를 대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속인들은 승려의 연령이나 학덕 및 수행 연한에 관계없이 대사라 불렀고, 승려들 사이에서는 자기의 동류나 손아래가 되는 이를 대사라 하였다. 특히, 절의 모든 사무를 맡아보는 사판승(事判僧)이나 강원에서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승려를 대사라고 불렀으며, 이에 반하여 선원에서 수선(修禪)하는 승려들을 수좌(首座) 또는 선사(禪師)라 하였다.
대사와 관련된 자료는 고려시대 국가의 불교 교단 운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